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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없는 국제 신용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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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없는 국제 신용평가사

입력
2008.02.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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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무디스, 피치. 전 세계 신용평가 시장의 98%(2006년 기준)를 장악하고 있는 신용평가회사들이다. 이들의 파워는 막강하다. 국가와 기업들의 자금조달 능력을 좌우하는 신용등급 결정이 이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의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등급 조정에 평가대상 기업은 물론 전 국민이 울고 웃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 회사의 신용은 과연 어떨까.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걸맞은 수준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고개를 내두른다. 오히려 이들의 신용평가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지속되는 금융위기 상황에서 신용평가사들이 '경고등'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은 2001년 파산하기 직전까지 '투자적격' 등급을 받았다. 이 같은 엉터리 신용평가는 7년이 지난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 메릴린치는 지난 달 17일 "모노라인(채권보증업체)에게서 보증 받은 채권 26억달러 어치가 휴지조각이 됐다"며 상각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직전까지도 무디스는 주요 모노라인 업체의 등급을 '안정적'으로 제시했고, S&P도 "모노라인의 신용등급을 하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초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미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채권) 부실 사태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이 관련 조치를 취한 것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 부실을 다 알게 된 3분기에 이르러서 였다.

무디스는 씨티그룹이 지난해 10월 순이익의 급격한 감소를 발표한 후에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편입돼 있는 수천 개의 채권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미래 예견 능력이 필수적인 신용평가사들의 반응이, 주식시장의 반응보다 훨씬 느린 셈이다.

더 거슬러 1997년 외환위기 때로 가보자. S&P는 환란 직전까지 한국을 호주 스웨덴과 비슷한 'AA-'로 분류했다. 이후 6개월간 한국의 등급은 투자부적격인'B+'까지 추락했다.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원성은 금융위기가 확산될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까지 나섰다. 크리스토퍼 콕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11일 "신용평가사들이 과거 매겼던 신용등급이 적절했는지 여부와 채무불이행 위험을 제대로 예측하고 등급을 부여했는지 등에 대한 근거자료를 공개토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잘못되거나 투자자를 오도한 신용등급을 매긴 신용평가사에 대해 벌칙을 부과하고 합당한 평가를 내린 신용평가사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경쟁시스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4일 찰리 맥크리비 유럽연합(EU) 역내시장 집행위원은 "전적으로 신용등급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기준을 병행한 기관들이 (신용경색 위기 대처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용평가 시장이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은 3대 신용평가사에 집중된 과점체제 탓에 경쟁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부 평가사가 모기지 회사의 위험을 수개월 전에 알고도 감추는데 급급했는데, 확고한 경쟁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평가를 받는 IB 등이 채권 발행자에게 특정 신용평가사를 추천할 수 있고, 이들이 주선한 수수료는 신용평가사와 피평가 회사 간의 커넥션으로 이어져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 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점 체제의 원인은 미국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2006년까지 국가공인신용평가기관 제도를 운용하며 130여개 신용평가기관 중 5개만을 공인기관으로 인정해 권력을 몰아줬다.

엔론 사태 이후 비판이 대두되자 공인기관 지정제를 폐지하고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SEC의 감독권한을 명확히 하는 신용평가기관개혁법을 제정했지만, 이미 형성된 과점 체제의 폐해는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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