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무너져내린 숭례문의 방재시설은 소화기 8대와 소화전 1개가 전부였다. 수도 한복판의 '국보 1호'가 이럴진대 다른 목조 문화재의 형편은 어떨까?
13일 현재 국보급 목조 문화재의 방재시설 현황을 살펴본 결과, 이들 국보 역시 숭례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산 속에 위치한 사찰의 경우 낙산사 화재 이후 방재시스템이 상대적으로 강화됐으나, 도심의 고궁 문화재들은 소화기와 소화전에만 안전을 의존해야 할 정도로 취약했다.
서울의 국보급 목조문화재가 즐비한 경복궁의 경우 총 면적 34만㎡의 경내에 마련된 방재설비는 소화기 251대, 소화전은 33개가 전부였다.
근정전(국보 제 223호)에 설치된 도난경보기를 제외하고는 폐쇄회로(CC) TV와 경보장치 등 첨단 방재시스템이 전무했다. 특히 일반에 개방된 경회루(국보 제 224호)와 건청궁은 소화기만 각각 14대, 20대 비치돼 있을 뿐이다.
총 247대의 소화기와 33개의 소화전이 있는 창덕궁도 국보 제 225호인 인정전에는 소화기 10대, 소화전 3개가 방재시설의 전부다. 창경궁 명정전(국보 제 226호)과 종묘 정전(국보 제 227호)도 각각 소화기 6ㆍ16대, 소화전 3ㆍ5개에 명운을 맡기고 있다.
야간 전문경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경복궁은 전경 18명이 2인1조를 이뤄 경내 전체를 순찰하지만,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는 방호원 1명과 사무실 당직직원 1명뿐이다.
CCTV나 경보장치 등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2명이 드넓은 경내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이다. 이광섭 창덕궁 서무팀장은 "경내가 크다 보니 한번 순찰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당장 완벽한 시스템이 갖춰지기 어렵다면 우선 인력이라도 지원됐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이만희(52) 창경궁관리소장은 "목조건물 화재는 일단 불이 붙으면 사실상 진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기 발견과 진화가 중요하다"며 "신속한 발견과 대처를 위해서는 상시인력 보강과 시설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지방 주요사찰은 도심 고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방재시스템이 잘 돼 있는 편이다.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 13호),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 18호),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 49호),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 67호) 등은 소화기와 소화전, CCTV, 경보장치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은 무인경비시스템 세콤과 수막시설까지 설치돼 있고, 화엄사 각황전은 열감지기와 연기감지기를 비롯해 방충, 방염처리까지 돼 있다. 그러나 야간경비의 경우 수덕사와 화엄사가 전문 인력을 채용한 데 반해 무위사와 부석사는 사찰내 인력들이 자체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수덕사의 곽호일 종무실장은 "낙산사 화재 이후 꾸준히 안전설비를 증강해 왔지만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재점검한 결과 CCTV의 촬영화면이 명확하지 않고 오작동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기로 했다"며 "물의 양이 적고 수압도 낮은 소화전을 교체하고 조만간 수막시설 공사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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