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인들의 숙원 사업인 새 바둑회관 건립의 꿈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한국기원 사무국은 올초 열린 상임이사회에 “바둑회관 건립 사업은 장기간 연기가 불가피하다”며 “지금 상태로는 빨라야 2014년께나 준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2006년 종로회관을 매각한 자금으로 내곡동에 새 회관 건립 부지를 매입해서 2007년에 착공, 금년 상반기 중에 완공하려던 한국기원의 꿈이 무산된 것.
원로 프로 기사들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뤄져 오던 새 회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2001년 허동수 GS칼텍스회장이 한국기원 이사장에 취임한 후 새 회관 건립 문제가 공식 거론, 이듬해 회관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돼 회관 건립 부지를 물색하는 등 구체적인 작업이 행해졌다.
그러나 마땅한 땅을 구하기 어려워 어려움을 겪다, 2004년 2월 상임이사회에서 허동수 이사장이 “LG정유(당시)가 보유하고 있는 서초동 땅 900여평을 바둑회관 부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그 해 6월 한국기원과 LG정유 간에 토지 사용 승낙 계약이 체결되는 등 바둑회관 건립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신축을 금지한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 등 현실적 난관에도 불구, 바둑회관 건립 사업은 진행돼 갔다. 그러나 2006년 6월에 발표한 정부의 서울 내곡동 일대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사업계획안(약칭 ‘내곡지구안’)에 새 바둑회관 부지가 포함돼 암운을 드리웠다. 결국 2007년 3월 국책 사업으로 확정된 ‘내곡지구안’에 따라 한국기원이 어렵게 마련한 새 바둑회관 건립 부지는 고스란히 정부에 수용 당할 처지다.
현재 추산으로는 ‘내곡지구안’이 확정될 경우 토지 수용가는 당초 매입가(평당 290만원)보다 다소 높은 평당 350만원선이 되겠지만, 몇 년 후 다시 불하 받을 때는 감정가가 평당 1,000만원선이 될 것으로 전망돼 앞으로 땅값으로만 100억원 정도가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익 기관인 한국기원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입돼야 하는 회관 건립에 목매야 하느냐는 원칙론, 재정 동원 능력에 대한 회의론 등이 지금 한국기원을 옥죄고 있다.
시간이 너무 지연되는 것도 문제다. 2009년까지 지구 설계가 완료, 2010~2012년 대지 조성 사업이 진행 등으로 잡힌 현재 발표된 정부 사업안에 의하면 빨라야 2014년에나 회관이 준공된다는 계산이다. 그 때까지는 꼼짝 없이 현재의 비좁은 회관에서 지내면서 천문학적인 땅값 마련에 허덕여야 할 형편이다.
마지막으로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다. ‘내곡지구안’은 오는 4월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남기고 있는데 만에 하나 여기서 계획이 변경되거나 부결되면, 문제는 간단해 진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계획이 부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말이면 허동수 이사장을 비롯, 한국기원 이사진이 대부분 임기가 만료돼 집행부의 대폭 교체가 예상된다는 게 또 문제다. 특히 지난 2001년 2월에 취임, 2기째 연임하고 있는 허동수 이사장은 ‘이번에는 꼭 그만 두겠다’는 뜻을 굳히고 후임 이사장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집행부마저 전격 교체된다면 과연 앞으로 회관 건립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바둑계는 걱정이 태산이다.
바둑계에서 새 바둑회관 건립이 추진된 것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다. 한국기원은 1968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5층짜리 회관을 지었으나 너무 좁아 1994년 왕십리(성동구 홍익동)에 위치한 현 회관으로 옮겼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총재 시절 희사한 5층 건물이다. 하지만 프로 기사 수와 국내외 기전이 크게 늘어 나면서 웬만한 국제 대회는 호텔을 빌려서 치러야 하는 실정이다.
훗날 ‘내곡지구’가 조성되면 단지 내에 바둑박물관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 아니냐는 맥 빠진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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