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건물 하나가 불탄 게 아니야. 내 인생 기록이 없어진 느낌이야…”
1955년부터 숭례문 앞 남대문로5가동(회현동)에서 살면서 같은 동네에서 30년째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숭례문 터줏대감’ 김영태(67)씨. 하루에도 수십차례 부동산계약서에 ‘남대문’을 썼던 그는 요즘 자신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숭례문은 늘 옆에 있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61년부터 3년간 진행된 숭례문 보수 작업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보수 전 숭례문은 누각이며 축대가 조금씩 다 허물어져 병든 환자 같았어. 그러다 보수가 시작됐는데 곳곳에 소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지. 매일 듣던 연장 소리가 어느 순간 뚝 그쳤을 때쯤, 모습을 드러낸 숭례문은 무척 예뻤어. 누각의 단청하며 처마 끝이며…. 그런데 다 타버리니 마음이 허전해.”
숭례문 소실로 온 국민이 허탈감에 빠져 있는 지금, 수십 년간 숭례문을 바라보며 살아온 남대문시장과 인근 지역 상인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착잡함에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삶이 고단하고 어려울 때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던 숭례문은 이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존재였다.
30여년간 남대문시장에서 수입상가를 운영해온 최한택(65)씨는 숭례문 소실로 인해 상인들이 ‘대한민국 대표 시장’에서 일 한다는 자부심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여기 상인들은 모두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고, 또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남대문시장에서 일한다는 데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 같은 게 있어. 그런데 그 상징물이 타버렸으니…”
최씨는 “숭례문 출입금지 시절, 울타리 하나 없었지만 누구도 숭례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만큼 숭례문을 아꼈다”며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치이고, 밤에는 노숙자들에게 치이게 방치한 관계당국의 무관심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며 혀를 찼다.
숭례문 인근에서 13년째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오세홍(64)씨에게는 일본인 관광객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라는 현실 문제도 고민이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숭례문을 알리고 싶어 가게에 일본어로 된 숭례문 안내책자까지 갖다 놓았었다”며 “솔직히 일본 관광객 감소로 매출이 줄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것보다는 국보1호가 훼손된게 더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숭례문 사람들’은 숭례문에 대한 미안함을 마음에만 담아둘 수 없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숭례문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들과 재개발 때문에 이 지역을 떠난 사람들의 모임인 ‘숭례문친목회’ 회원 25명은 2000년부터 모임 운영비 명목으로 모아온 3,000만원을 숭례문 보수 및 관리에 보태기로 결정했다.
단체 이름으로 ‘숭례문’을 쓰면서 막상 숭례문에게 해준 게 없다는 생각에 회원들이 자진해 이 같이 결정했다. 김무영(63) 총무는 “숭례문 보수비용을 국민성금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기탁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바뀐 것 같아 정확히 어떻게 쓸 지는 결정하지 못했다”면서도 “조만간 숭례문 보수나 보수후 관리에 쓰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회원들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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