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우리 소설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들인 지극한 노력에 비해 소위 ‘성공한 중산층’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던 게 사실입니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이 있다면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기거하는 사람의 외로움도 있지 않을까요.”
국내 최대 고료(1억원)의 장편소설 공모상인 제4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소설가 백영옥(34)씨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에서 많이 다루지 않던 중산층과 그들의 직업 세계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선작 <스타일> (문이당 발행 예정)엔 31세 8년차 여기자 ‘이서정’을 주인공으로 패션잡지 제작자들의 세계가 생생히 펼쳐진다. 스타일>
까탈 많은 취재원과 어김없이 다가오는 마감, 기사 가로채기도 서슴지 않는 비정한 경쟁, 유력 기자들이 편집권을 놓고 벌이는 사내 정치, 치명적 소문이 난무하는 패션계의 생리 등등. 그 자신 유명 패션잡지 기자였던 작가의 경험이 뒷받침된 이 소설은 유행의 첨단을 이끄는 사회에 대한 흥미진진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스타일> 은 이런 패션계의 풍경과 ‘이서정’의 연애담을 이야기의 씨줄날줄로 삼는다. 하여 이 소설은 20, 30대 젊은 여성을 주독자층으로 삼는 장르인 칙릿(chick-lit)의 전형을 보여준다. 스타일>
백씨는 “칙릿의 기원은 영국 상류 계층의 사교와 결혼을 다룬 19세기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익숙한 정형의 이야기를 선호하면서 그 익숙함을 세련되게 풀어내주길 기대하는 독자들은 늘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주인공이 얼굴 없는 독설가인 인기 요리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또다른 이야기 축으로 삼아 스스로 ‘미스터리 칙릿’이라 일컫는 장르의 변주를 시도했다.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백씨는 대학 졸업 후 10여 년 직장 생활을 거치며 문청(文靑) 시절의 ‘문학지상주의’와는 다른 문학관을 체화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엔 밤에 글을 썼지만 지금은 낮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규칙적으로 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면서 강박증 없이 글 쓰는 훈련을 한 덕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상상과 공상의 세계인 ‘밤’에서 현실과 상상의 황금비율을 고민하는 ‘낮’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대중소설가’란 평판을 얻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백씨는 “한국 문단에도 (순수문학 본위의) 아쿠타가와상뿐 아니라 (대중 지향적인) 나오키상에 준하는 문학상이 많이 나올 때”라면서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길어낸 이야기로 ‘제법 읽을 만한 소설을 줄기차게 발표하는 부지런한 작가’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백씨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시 직장인들의 몸과 욕망이 요즘 내 창작의 화두”라고 덧붙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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