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보복 범행한 잔인한 살인자에서 러시아 국민의 영웅으로....’
2002년 7월 독일 상공에서 스위스 관제사의 유도 실수로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와 화물기의 충돌사고로 아내와 두 자녀를 잃은 뒤 문제의 관제사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했다가 풀려난 비탈리 카롤예프(52)가 고위 공직에 취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일간 타임스 인터넷판은 12일 살인 혐의로 스위스에서 4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11월 풀려난 카롤예프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그가 고향인 북오세티야 공화국에서 올 초 건설차관에 임명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자신의 가족을 숨지게 한 스위스의 관제사를 찾아가 말다툼 끝에 죽인 카롤예프의 조기 석방을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건축기사였던 카롤예프가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고위 당국자가 영접에 나섰고 북오세티야의 블러디카프카즈에선 그를 영웅으로 추겨 세우는 플래카드들이 거리에 나붙은 가운데 푸틴의 ‘청년친위대’로 불리는 나시 대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영웅이 아니고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가족을 잃었고 내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담담히 술회했다.
그러나 카롤예프의 가족을 비롯한 71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투폴레프-154 여객기는 치명적인 관제 오류 때문에 보잉-757 DHL 화물수송기와 공중에서 부딪혔다. 사고로 카롤예프의 아들과 딸을 포함해 모두 52명이 변을 당했다.
사고조사에서 취리히 공항에서 관제를 맡았던 덴마크 출신 관제사 페테르 닐센이 여객기와 화물기가 충돌하려는 것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조종사들에게 잘못된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카롤예프는 “공항에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아내와 아이들의 유해를 찾아 헤맸다. 겨우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해 깨끗이 씻은 다음 관에 안치했다”고 말했다.
카롤예프는 닐센과 그의 소속사인 스카이가이드에서 사과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카이가이드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우려해 러시아 여객기 조종사들이 실수해 참사가 일어났다는 등 책임을 전가했다.
답답해진 카롤예프는 2004년 2월 취리히로 가서 스카이가이드측과 만남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닐센의 자택을 방문해 문을 두드렸다. 밖으로 나온 닐센에게 러시아에서 온 희생자 가족이라고 밝히자 닐센이 문을 갑자기 닫았고 그 바람에 카롤예프가 들고 있는 아이들 무덤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카롤예프는 닐센이 아이들을 다시 죽였다는 분노가 치밀었고 이성을 잃었고 닐센은 여러 차례 흉기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다음날 체포된 카롤예프는 재판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고 나중에 감형됐다. 충돌사고는 5년여의 조사 끝에 지난해 스카이가이드의 관제사 4명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되면서 마무리됐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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