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12일 숭례문 화재 소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국보 1호’에서 하루 아침에 흉물로 변해버린 숭례문 발치에 엎드려 사죄했다.
가림막 설치로 먼 발치에서 무너져 내린 숭례문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 연실 눈물을 흘렸고, 자식의 진로를 걱정하듯 보존과 복원을 놓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600년 역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 때문인지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숭례문 주위를 맴돌거나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날 화재 현장에는 시민들이 바친 대형 조화가 속속 놓였으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쉽게 목격됐다.
남대문로 5가동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주민들이 2000년에 구성한 ‘숭례문회’ 회원 25명은 제사상을 차려와 제를 올렸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은 회원도 불편한 몸에도 함께 절을 할 정도로 열정은 대단했다.
김열한(67)씨는 “어릴 적부터 매일 보고 자란 숭례문이 하루 아침에 없어졌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어제 회원들이 모여 제사라도 드리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울먹였다.
백창기(50)씨는 “숭례문에 불이 난 10일이 마침 내 생일이었다”며 “가족 친척들과 기분 좋게 저녁을 먹었지만 화재 소식을 듣고 어느새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 됐다”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들어서는 어린 학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서울 미림여고 김정희(19) 양은 “오늘 학교가 개학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화제가 온통 숭례문이었다”며 “학교가 일찍 끝나 바로 친구들과 달려왔지만 막상 사라진 숭례문의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아홉살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 김혜란(43ㆍ서울 구로구 개봉동)씨는 “아이가 숭례문 화재 장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계속 울었다”며 “문화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교훈을 주는 교육 현장이어서 날은 춥지만 아이와 함께 숭례문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방 거주자들도 숭례문을 찾아 애도했다. 11일 전남 목포에서 올라온 박승희(20)씨는 “서울 시민들이야 숭례문이 친숙한 대상이었겠지만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의 상징이자 국보1호로서의 신성함 같은 것 마저 느끼게 했다”며 “숭례문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현장을 찾았는데 마음이 숙연해지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4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재난극복범시민연합은 이날 숭례문 앞 잔디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철저한 화재 원인 규명과 문화재 방재시스템 재정비 등을 촉구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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