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잿더미 된 숭례문/ 평범한 70代노인의 방화 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잿더미 된 숭례문/ 평범한 70代노인의 방화 왜…

입력
2008.02.12 14:52
0 0

숭례문 화재 소실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채모(69)씨는 머리가 하얗게 센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는 왜 국보 1호에 불을 지른 것일까.

전문가들은 토지 보상 문제로 촉발된 채씨의 분노 대상이 ‘개인’이 아닌 ‘국가’라는 추상적 존재였기 때문에 단시일 내 갈등을 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축적된 억울함과 분노가 방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채씨는 1998년 경기 고양시 일산의 집이 아파트 신축 개발 부지에 포함돼 개발업체와 보상금 협의를 벌이다 결국 계약이 파기되는 일을 겪었다. 채씨는 법정 소송을 비롯해 고양시청, 대통령비서실 등에 수 차례 진정과 이의를 제기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민원을 넣어도 반응이 없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억울한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며 “문제는 자신의 분노를 해결할 만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자 피해 의식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분노가 피해의식으로 번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화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의미다.

실제 채씨는 계약 파기 사건 이후부터 심한 내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씨의 가족들은 “가끔 ‘나쁜 놈들’이라고 잠꼬대를 할 정도로 토지 보상 문제에 한이 많았다”고 전했다. 채씨는 ‘오죽하면 이런 일(자살 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을 하겠는가’라는 제목의 1년 전 자필 편지에서도 “나는 억울하다. 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사회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웃들은 채씨의 이런 남모를 고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 강화군 화점면 주민들은 채씨에 대해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상소리도 하지 않는 점잖은 양반”이라며 ‘그런 일(방화)을 저지를 리가 없다”며 충격과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채씨의 분노가 문화재 방화로 표출된 데 대해 “내성적인 성격의 채씨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해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알리고 주목 받고 싶은 심리가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채씨가 가정생활의 어려움 등 현실적인 고통이 심해지자 치밀한 방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몰두함으로써 현실도피를 꿈꿨던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