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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로 첫 주연 '김윤석' 짐승의 눈빛, 마음껏 울부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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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로 첫 주연 '김윤석' 짐승의 눈빛, 마음껏 울부짖다

입력
2008.02.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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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손 댔다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남자. 그런 에너지를 지닌 배우가 몇몇 있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복이다. 배우 김윤석(40)은 늦깎이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2006년, <타짜> 를 보던 관객들은 검은 선글라스를 뚫고 나오는 짐승의 눈빛에 전율했다. 저승에서 키우던 개의 이빨 같은 질감으로, 김윤석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새 영화 <추격자> (감독 나홍진)에서, 그 짐승은 주인공이 돼 마음껏 포효한다.

“얘가 절대로 도덕적인 성찰을 얻어서 개과천선할 놈은 아니죠. 근데 이 새끼가 왜 미진이를 끝까지 찾으려고 그럴까? 그건 분노, 정말 자신을 미치게 만든 놈에 대한 분노, 이 놈은 무조건 내가 잡아 죽인다, 그런 동물적인 집요함….”

사실상의 첫 주연이서인지 아니면 미치도록 마음에 꼭 드는 캐릭터라서 그런지, 김윤석은 극중 자신의 역할인 엄중호에 푹 빠져 있었다. 수십 번의 인터뷰에서 반복된 질문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엄중호의 캐릭터에 대한 답변에는 힘이 들어갔다.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질겅질겅 툭 내뱉는 말투에는 고스란히 엄중호가 담겨 있었다.

“시나리오가 굉장하더라고. 간결하고 힘 있고 진부하지 않고. 원래 <즐거운 인생> 보다 먼저 들어왔는데, 감독더러 그 영화 찍고 올 동안 한 글자도 고치지 말라고 그랬어요. 근데 정말 안 고쳤더라고. 게다가 상대 배우가 하정우라잖아. 오케이! 한 번 해보자, 그랬지.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엄청 몰입해 찍었어요. 나중엔 연출부, 조명부 그런 구분도 없어지더라고.”

그의 말대로 영화는 찰기가 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개와 투박함이 느껴지는 사실적 액션이 모두 끈끈하게 이어진다. 별다른 특수효과나 촬영기법의 현란함 없이도 그런 접착력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김윤석의 에너지다. 하지만 그는 쏟아지는 호평을 반은 시나리오, 나머지 반은 하정우의 덕으로 돌렸다.

“지문이 필요 없는 시나리오였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해 쓴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썼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 없는 거지. 하정우도 그래. 몸짓 하나하나가 전혀 과장도 없고, 남자가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수성도 풍부하고…. 이번 영화도 두세 번 반복해 보면 나보다 하정우가 보일 거에요.”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진가를 인정 받았지만, 송강호 설경구 등 같은 연배를 선점한 다른 배우와 겹치는 이미지 때문에 소모적인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피곤한 질문에 “글쎄 뭐, 남들이 그렇게 보는 걸 내가 어떻게…”라며 심드렁하게 꺼낸 대답이 자연스레 연기론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우리가 기성세대의 마지막 ‘꼬봉’세대에요. 묘하게 마초적이고, 또 문란함에 대한 면역도 있고…. 그래서 <타짜> 의 아귀 같은 패셔너벌한 캐릭터보다는 <천하장사 마돈나> 의 동구 아빠나 이번 영화의 엄중호 같은 역할이 소화하기도 쉽죠. 우리는 그런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근데 내 뒤로 극단에 들어온 애들은 청소도 안 하더라고.(웃음)”

천 번 두드리고 만 번 담금질해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 같은 배우. 그 에너지 앞에서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왜 연기를 하냐고? 글쎄… 내가 살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살 수 있는 일이 이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역을 맡으면 사람에 대한 탐구를 끝까지 멈출 수가 없어. 거창한 가치를 찾는 건 아니라도, 매 순간 살아간다는 데 대한 실감이 난달까….”

■ '추격자' 살인마 쫓는 포주의 24시간 그린 심장뛰는 스릴러

비리 경찰 출신의 출장마사지업소 사장과 정신이상의 연쇄살인마. 영화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를 처음부터 보여주고, 그들의 추격전을 24시간 동안 좇는다. 서스펜스를 거세하고 대신 심장박동을 증폭한 스릴러다. 만만찮은 신인 감독과 내공이 검증된 배우들이 멋진 앙상블을 이뤘다. 한 마디로, 새롭고 단단하다.

엄중호는 일을 보낸 아가씨들이 돌아오지 않자 직접 그들을 찾아 나선다. 아가씨들이 모두 같은 전화번호의 손님에게 간 뒤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이 도망간 게 아니라 팔려갔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육박전 끝에 전화번호 '4885'의 주인을 붙잡아 경찰에 넘기지만, 체포시한이 지나도록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스릴러의 틀을 취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스릴러의 공식을 과감히 던져 버렸다. 범인의 살해 동기도, 살인마가 된 트라우마도 흐릿하게 처리했다. 반면 비린내가 느껴지는 하드보일드 액션과 적절한 블랙코미디로 영화에 입체감을 더했다. 구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뒤집고, 가련한 캐릭터의 여배우를 토막내 버리는 뚝심에 점수를 주고 싶다. 14일 개봉. 18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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