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누각 바닥에 시너 1.5ℓ를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12일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모(70)씨의 진술로 첫 발화 상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화재 진압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국보 1호' 숭례문이 한 줌 재로 스러지고 만 이유는 아직 명확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바닥 불이 어떻게 지붕으로 번졌나
소방대원들이 10일 오후9시께 연기가 피어나는 숭례문 2층 누각에 처음 진입했을 때 바닥에는 불붙은 나무 막대기가 눈에 띌 뿐 바닥에 큰 불길은 없었다. 반면 천장은 연기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소방당국은 이 때문에 숭례문 화재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판독 결과 등을 더해 2층 좌측 내부 천장 쪽을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했다.
바닥에만 불을 냈다는 채씨의 주장이 맞다면 천장의 더 큰 불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불이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목재건축 전문가들은 "적심이란 기와와 서까래 사이에 있는 굉장히 두꺼운 부분이어서 직접 불을 붙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기둥을 통해 불이 번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2004년 바닥과 기둥에 방염처리를 한 점, 1.5ℓ페트병 1개 분량의 시너는 폭발성은 강하지만 화재의 지속력은 약한 편이라는 점 등에서 채씨가 천장에 직접 불을 붙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은 예산 문제로 천장에는 방염처리를 하지 않았던 만큼 채씨가 사다리를 이용해 천장에 직접 불을 놓았을 수 있다. 하지만 바닥에 불을 내고 시너가 폭발한 급박한 상황에서 채씨가 여유 있게 천장에까지 방화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채씨가 불을 낼 때 옆에 뒀다고 진술한 시너 페트병 2개의 역할이 주목 받고 있다. 경원대 소방방재공학과 박형주 교수는 "시너가 담긴 1.5ℓ 페트병 2개가 만드는 불기둥은 엄청난 화염을 내뿜으면서 최소한 3, 4m 이상 치솟는다"고 말했다. 채씨가 남은 시너를 천장에 뿌리거나 직접 불을 붙이지 않아도 남겨 둔 시너 2개가 연쇄 폭발하면 천장에 직접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장 적심 속 불씨 왜 못 찾았나
국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천장의 불씨를 찾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이나 문화재청도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초기 간접진화 방식으로 불길을 어느 정도 잡은 뒤 잔불 정리에 나섰고, 일부 소방력을 철수하는 우를 범했다"는 비난도 나오지만 화재 진압 전문가인 소방관들이 한결 같이 착각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소방관들이 숭례문 지붕내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천장 속에서 진흙과 회반죽 등에 싸여 있는 적심목은 산소가 부족해 불완전 연소하면서 노란색이나 검은색 연기를 낸다. 소방관들이 적심목의 존재를 몰랐던 탓에 그 심각성을 몰랐다는 것이다. 명지대 건축대학 김홍식(63) 교수는 "소방대원들이 숨은 불씨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전통 지붕 양식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화재에서는 소방대원들이 건물 구조를 잘 몰라도 도끼 등으로 천장을 해체해 남은 불씨를 하나하나 찾아 없앤다는 반박도 나온다. 숭례문의 경우도 화재 초기에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이 적극 진화라는 빠른 결단을 내렸다면 연기를 내뿜는 천장을 해체해 불타는 적심목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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