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 소실의 책임이 있는 관련 당국과 공무원들이 숯덩이가 된 숭례문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으려 하기는커녕 임기응변식 수습에만 매달리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관련 당국은 사고 경위 조사 및 신속 복구를 강조하며 숭례문 주변에 가림막을 쳤지만 참화 현장을 찾은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후손들의 잘못으로 잿더미가 된 숭례문의 처참한 모습을 날 것 그대로 공개한 채 사고 조사와 복구 작업을 하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숭례문의 흉한 몰골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12일 숭례문 주변에는 최대 높이 6m의 이중 가림막이 설치됐다. 서울시는 미관과 신속한 조사ㆍ복구를 명분으로 13일까지 높이가 12.5m인 숭례문 주위에 15m의 이중 가림막을 설치, 인근 고층 건물에 오르지 않고는 숭례문을 볼 수 없도록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날 숭례문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가림막 설치를 ‘신속 조사ㆍ복구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기보다는 당국이 치부를 가리려는 행동이라고 꼬집으며 철거를 요구했다. 경기 산본시에서 온 이모(49ㆍ여)씨는 “가뜩이나 불에 타 애처로운데, 가리면 안된다. 잘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가리려고 장막을 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은호(73)씨도 “장벽을 치면 안된다. 보기 흉해도 역사의 현장이다. 관리 소홀로 불탄 것도 역사”라며 가림막을 거둘 것을 촉구했다.
2001년 9ㆍ11 테러 당시 미국 정부의 대응을 예로 든 시민도 있었다. 김모(54)씨는 “가림막 대신 미국은‘그라운드 제로’로 명명된 테러 현장에 참배객용 관람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9ㆍ11 테러 이후 1년간 현장에는 하루 평균 2만5,000명, 연간 900만명의 미국인이 방문해 테러가 남긴 교훈을 되새겼다.
성급한 숭례문 복원 방침에도 여론은 따갑기만 하다. 문화재청이 “200억원을 들이면, 2~3년 후에는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발표한 데 대해서도 ‘철저한 사고 경위 파악이 먼저’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사고 원인 규명과 철저한 진단을 한 뒤 복원해야 한다. 또 숭례문을 형상대로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복원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는 역사의 교훈으로 삼도록 따로 전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사이버대 이준엽 교수도 “무너진 지 채 하루도 안돼 2~3년 후면 복구할 수 있고 복구 비용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발표는 너무 성급하다”며 “이번에도 대형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졸속 복구가 이뤄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김정우기자 wookim@hk.co.kr이태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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