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진 충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국내 스포츠계에 성폭행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한 여고 농구부 선수 대부분이 몇 해 전 지도자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이 KBS 1TV <시사기획 쌈> 에 의해 드러났다. 당시 대한농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된 이 지도자는 버젓이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에 또 다른 여자학교 선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또 다른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시사기획>
대한체육회는 체육계에 떠도는 성폭행 소문에 대해 진상조사에 나섰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12일 “체육계 자정운동 차원에서 언론에 드러난 사례를 철저히 조사해서 발본색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폭행은 피해자가 숨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체육회가 직접 가해자를 찾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KBS 취재에 응한 한 체육 관계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 “모 지도자가 ‘선수는 자기가 부려야 하는 종이다. 선수를 장악하려면 성적인 관계가 주방법이고, 두 번째는 폭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가해지는 성폭행이 초등학생에게까지 미친다는 고백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체육회는 홈페이지(www.sports.or.kr)에 마련한 신문고를 통해 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다. 김정길 회장은 “회장이 직접 확인하기 때문에 신분 노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체육회는 지난해 신문고에 접수된 지도자의 폭행 사례 등을 조사한 뒤 해당 지도자를 처벌했다.
체육계 성폭행 실태는 여자프로농구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이 지난해 5월 선수를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알려졌다. 당시 피해 선수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려면 감독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감독의 권력이 워낙 커서 선수가 감히 감독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한배구협회 김형실 전무는 협회 차원에서 성폭력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보도에 충격을 받았다”는 김 전무는 “그러나 발생한지 10년 이상 된 사건을 마치 지금 벌어진 것처럼 보여주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대다수인 선량한 지도자가 성폭행범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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