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보물인데 밤이 되면 정부는 손 놓고 민간 용역업체가 관리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11일 오후2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숭례문 화재사고 현장. 웅장했던 ‘국보 1호’의 위용은 온데 간데 없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그을린 잔해뿐이었다. 시민들은 그 참혹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전소(全燒)된 숭례문에 대한 죄스러움에 헌화의 물결이 이어졌다. 흰 조화를 바치며 엎드려 흐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이보람(23ㆍ여)씨와 김준국(22)씨는 흰 국화꽃을 바친 뒤 “너무나 가슴이 아파 아침에 집을 나섰다”며 “막상 눈으로 직접 보니 하늘이 뻥 뚫려버린 것 같아 너무나 슬프다”고 아쉬워했다.
상당수 시민들은 착잡한 표정과 함께 휴대폰과 카메라로 숭례문을 사진 속에 담았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김용연(38)씨는 “다시 복원이야 되겠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수천 명의 시민이 찾은 숭례문 앞은 정부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시민 사이에서는“도대체 경비를 어떻게 했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의 에펠탑, 중국의 자금성이 무너진 꼴”이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10대 시절 3년간 숭례문 인근에서 살았다는 정순녀(68ㆍ여)씨가 “정부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용역을 줬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시민들 사이에서 “나라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맞아 맞아”하는 동조의 외침이 잇따랐다. 정씨는 한숨을 쉬며 “복원한다 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 아니냐”며 “국산 나무도 없다는 데 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냐”고 가슴을 쳤다.
일본에 살다 지난해 귀국했다는 강경자(56ㆍ여)씨도 “조상의 얼이 담긴 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긍지를 느끼며 살아가야 하냐”며 “고궁의 수문장 교대식을 보면서 ‘이제 우리 나라도 잘하는구나’ 생각하고 뿌듯했는데 다 수박 겉핥기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불이 났으면 일단 끄고 봐야지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는 게 이해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린이들의 눈에도 이번 화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겨울방학을 이용해 서울에 놀러 왔다 할머니와 함께 화재 현장을 찾은 충북 제천시의 임현규(11)군과 동생 지윤(9ㆍ초등 2년)양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지 못해 안타깝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 같다”고 어른들 모두를 향해 뼈있는 한마디를 건넸다.
서울의 명소였던 숭례문의 소실을 슬퍼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대학생 김기현(26)씨는 “시내 외출 때마다 봐 왔기에 일상의 한 부분 같았는데, 이렇게 돼 멍하다”며 상실감을 토로했다. 한 달 간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는 루이즈 캘러허(21ㆍ여ㆍ오스트레일리아)씨도 “너무나 큰 비극인 것 같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고 즐기는 관광지였는데 큰 손실을 입은 것 같다”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지방의 한 어린 네티즌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없어지면 어떻게 해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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