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당은 포장마차다. 수명이 짧고, 신속한 이동과 개명(改名)이 정당의 속성인지라 국내외적으로 경멸과 경악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까진 만인이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언론은 정당의 포장마차화에 대한 책임을 정치인들에게만 묻는다. 어느 신문은 17대 국회 '철새'들이 정당정치를 망쳤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정치인들이 져야 할 책임도 있지만, 나는 지식인과 유권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한국문화'가 주범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열린우리당 창당 움직임이 일던 2003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신문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자. 개혁ㆍ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일수록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정당정치를 망치는 짓이라는 비판은 수구적 또는 지역주의적 구태로 매도되었다.
■ 지식인ㆍ유권자들에게도 책임
당시 개혁ㆍ진보적 시민사회의 다수가 열린우리당 창당에 비판적이었다면, 그래도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물이 없는데 어찌 고기가 놀 수 있겠는가? 열린우리당 창당이야말로 한국정당의 포장마차화에 대한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5가지 이유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 극단적 정치혐오증이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정치를 때려 부수고 엎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기성 정치인들보다 나을 게 있건 없건 신진 집단은 비교적 소외돼 왔다는 이유만으로 '개혁'을 선점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정당의 포장마차화는 상당 부분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돼 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둘째,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조급증이다. 정당 내부개혁은 기득권 집단의 반발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정당정치의 착근을 위해선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조급한 유권자들은 당내 개혁세력 또는 불만세력이 딴살림 차리는 걸 선호하거나 불가피하다고 이해한다.
셋째, 새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새것 신드롬'이다. 고쳐쓰기보다는 갈아치우는 걸 선호한다. 말로는 '역사와 전통'을 외치지만, 실은 내세울 것 없는 '역사와 전통'에 신물을 낸다.
왜 성인군자같던 사람도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탐구해 그걸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정당이나 사람 탓만 한다. 그걸 잘 아는 정치인들은 정당 이름을 바꾸거나 단지 때묻을 기회가 없었을 뿐인 '젊은 피'를 수혈하는 걸로 화답한다.
넷째, 연고×정실주의와 유착한 인물중심주의다. 한국정치는 '정당정치'가 아니라 '보스정치'이며, 정당은 보스의 졸(卒)이다. 보스정치는 사라졌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아버지'가 '형님'으로 바뀐 것일 뿐 보스정치는 건재하며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꽤 괜찮던 정치인도 보스 행세를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면 자신이 원조(元祖)가 되고 싶은 탐욕에 사로잡혀 신당을 만들고, 지도자 추종주의가 강한 유권자들은 그런 탐욕에 맞장구를 쳐준다.
■ 한국사회 역동성 반영이기도
다섯째, 출세지향적 기회주의다. 정당정치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정치인의 대폭적인 물갈이와 빠른 상층부 진출은 어려워진다. 이게 국리민복에 더 기여한다 하더라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는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야심가들의 출세 수단인 바, 야심가들의 정계진출과 신분상승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야심가마다 연고ㆍ정실관계로 거느리고 있는 유권자의 수는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 총합은 국민적 불만으로 승격된다.
이처럼 정당의 포장마차화는 우선적으로 유권자들의 문화와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며, 정치인들의 책임은 부차적이다. 너무 비관하기보다는 한국사회가 자랑하는 역동성의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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