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11일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일회용 라이터 2개와 출처 불명의 사다리 2개가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방화 가능성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한 남성이 알루미늄 사다리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로 미루어 용의자가 방화를 위해 이 사다리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다리, 라이터… 방화의 결정적 단서?
현장에서 발견된 일회용 라이터와 사다리 2개는 이번 사건이 방화일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하는 증거물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이날 초기 화재 진압 당시 한 소방대원이 2층 누각 '큰 기둥' 아래에서 일회용 라이터 2개를 목격했다는 진술에 따라 잔해를 수색한 끝에 증거물 확보에 성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지문 감식 등을 의뢰했다.
이날 오후6시30분께 현장 감식 작업을 벌이던 경찰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다리 2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경찰은 이 사다리가 목격자 3명 중 한 명의 진술과 일치함에 따라 용의자 추적에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격자 이모(30ㆍ광고대행사 직원)씨는 경찰 조사에서 "키 165cm 가량, 황색 점퍼를 입은 60대 남성이 등산 가방과 알루미늄 사다리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용의자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수사에 혼선을 겪고 있다. 또 다른 목격자인 이모(45ㆍ택시기사)씨는 "키 170cm,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50대 남성이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고 말해 용의자의 옷 색깔과 나이와 체격 등에서 차이가 있다.
경찰은 용의자를 직접 차에 태웠다는 추가 목격자 이모(49ㆍ택시기사)씨의 진술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0일 오후8시40분~50분께 서울 중구 YTN빌딩 앞 횡단보도에서 점퍼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50대 남성을 태운 뒤 오후9시5분께 숙명여대 입구에서 내려줬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또 "이 남성이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남대문에서 연기가 난다'고 묻자 불안한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탐문 수사 확대
경찰은 숭례문 무인경비서비스 업체인 KT텔레캅이 숭례문 관리사무소 안에 설치한 CC(폐쇄회로)TV 4대의 녹화 화면을 확보해 조사했으나 용의자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숭례문 일대 방범용 CCTV를 통해 용의자도주 경로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남대문 일대를 돌며 탐문 수사를 벌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날 숭례문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 중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들을 불러 관리 소홀 여부 등을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3명의 공무원이 숭례문을 포함해 총 12개의 문화재를 관리해왔으며, 숭례문의 경우 오후8시 이후에는 순찰근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12일 숭례문 화재 사건 수사본부(본부장 박종준 서울경찰청 수사부장)를 설치하고 서울청 광역수사대 등 수사인력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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