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새까맣게 불타버린 숭례문이 증거하는 부실한 문화재 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다. ‘국보 1호’의 명운을 소화기 여덟 대에 맡긴 대한민국은 문화재에 관한 한 ‘무방비 국가’다.
현행 문화재 관리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렇다 할 방재관련 법규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특히 목조문화재는 각종 재난ㆍ재해에 취약해 각별한 보호 조치가 요구됨에도 문화재보호법에는 소방설비 설치 등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다.
문화재보호법 제88조(화재예방 등)에 “문화재청장이나 시·도지사는 지정문화재의 화재를 예방하고 소화 장비를 설치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당위론적으로 기술돼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 방재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소방시설 설치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준용하고 있다.
이처럼 미비한 법규로 인해 ‘원형 보존’ 논리가 앞서는 문화재는 오히려 일반 건물보다 방재관리가 취약한 경우가 많고, 화재 등 재해가 닥쳐도 적극적인 진화작업이 어렵다.
지난해 문화재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요 목조 문화재 100곳 중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30곳 이상이었고, 소화기조차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국보 1호란 곳이 스프링클러나 화재경보장치, 보안요원 상주 등은 고사하고 소방법에 따라 간이 소화기만 설치하면 되는 곳으로 분류돼 있는 실정이다.
2005년 4월 양양 낙산사 소실 이후 문화재청은 중요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구축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진행이 더디다.
시ㆍ도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중요 목조문화재 124개에 수막설비와 경보시설 등을 설치하는 이 사업은 지난해 해인사, 봉정사, 무위사, 낙산사 등 4곳에 첫 시행됐으나, 숭례문은 48위로 산불 위험과 소장 문화재가 많은 주요 사찰 문화재 등에 비해 뒤로 밀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업기간 동안 선량한 시민들의 양심만 기대하고 있어야 할 형편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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