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를 높이 치켜든 발레리나 같다. 한 다리로 빙판 위를 활강하는 피겨 스케이트 선수 같기도 하다. 질료는 직육면체의 기다란 막대뿐. 그러나 그의 손길이 닿으면, 기하학은 춤춘다.
미국 뉴욕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조엘 샤피로(67)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수차례 개인전과 회고전을 가진 샤피로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조각의 거장 데이비드 스미스와 196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던 도널드 저드에 비견되는 조작가. 간결한 조형언어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지우며 형상의 가능성을 극한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2년 만에 열리는 이번 한국 전시에는 한두 뼘 길이의 소품부터 4m 높이에 이르는 대형 야외조각까지 그의 근작 브론즈 조각들과 드로잉 작품이 총 20여점 선보인다.
작품들은 빙 둘러보며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너른 공간에 널찍하게 설치됐다. 특별한 시점 없이, 어디서 보아도 율동감으로 생동하는 그의 작품들은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며 역동적으로 공간을 뚫고 나가는 저마다의 동작들이 일품이지만, 작가는 “아름답고 우아한 인체 표현이 내 작품의 목적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내 작품은 추상입니다. 제 조각 옆에서 동작을 그대로 흉내내는 어린이들을 종종 보죠. 완성된 작품과 대화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니 그것대로 좋습니다. 하지만 제 작품은 정확한 묘사나 재현이 아니라 추상적 언어입니다.
특정한 재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경험의 근본적 형태를 발견하려는 것이지요.” 그는 “사고를 표출하는 기제로서의 동작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며 “하나의 생동감 있는 형태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특정 동작이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샤피로의 조각은 폴짝거리는 봄처녀처럼 명랑하고 경쾌하지만 구성성분은 한결 같은 무기질의 직사각형들이다. “직육면체를 특별히 좋아해서는 아니에요. 그건 독서와 책은 좋아하지만 알파벳에 대해 낭만적 애착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직육면체는 인류 보편적인 언어입니다.
원기둥은 주변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기보단 그 자체로 오브제가 되지만, 직육면체는 조각이 놓이는 주변의 건물, 벽, 바닥 등과 유관성을 갖고 있어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하죠. 그런 면에서 굉장히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목재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표면의 금속성을 거세하고 나무의 결을 입힌 샤피로의 작품들은 묘하게 인간적이다. “조각은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브론즈와 나무 같은 재료들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인간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 그로써 삶의 의미를 창출하는 것, 그게 바로 조각의 매력이죠.”
서울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28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부산으로 옮겨 해운대 노보텔 호텔 4층의 가나아트부산에서도 열린다. (02)720-1020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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