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전준엽(55)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0여년간 잡지와 일간지의 미술전문기자로 일하다가 1995년부터 9년간 대기업 사립미술관의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직접 뽑은 신정아라는 ‘출중한’ 큐레이터가 그를 밀어내고 학예실장으로 중용된 2004년까지, 그 유명한 성곡미술관에서다.
전준엽의 신작들을 선보이는 17번째 개인전이 12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열린다. 신정아 소용돌이에 휘말려 붓 들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 지난 한해 동안 그린 작품들이다.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두 번 받으면서 신정아의 투서 때문에 학예실장에서 쫓겨난 걸 알게 됐죠. 횡령이니, 전횡이니, 주변에서 투서에 관한 소문을 전해줬어도 전혀 믿지 않았을 정도로 신정아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어요.
그렇게 감쪽같이 절 속이다니, 신정아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해줘 고맙기도 합니다.” 그는 “작품을 그리고 있는 동안이라 그 모든 혼란과 충격을 견딜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때 민중미술 계열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분벽화를 그리며 새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 걸리는 작품들은 전통 산수화 양식의 유화들.
“제 궁극적인 목표는 동양화, 서양화와는 다른 한국화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은 화면 구성이나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등 조형언어가 전부 서양화돼 있습니다. 표현성이 풍부한 유화라는 서양재료로 조선 수묵 산수화의 조형언어를 구축하는 것, 한국화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는 게 제 꿈입니다.”
소리와 향기, 정취가 공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풍경을 그리겠다는 그의 바람은 실경이 아닌 관념적인 풍경의 세계로 그를 이끌었다. 물감을 부은 뒤 입으로 바람을 불어 만든 몽글몽글 부풀어오른 대숲, 상하종횡으로 교차하는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는 화면, 너댓 번씩 물감을 바르고 긁어내길 반복해 만든 누르스름한 하늘 등이 낯선 듯 익숙한 한국적 진경의 세계를 보여준다.
(02)549-3112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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