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이시우, 일심회. 얼마 전 같은 날 신문에 난 기사의 주인공들이다. 우연히 같은 지면을 장식한 이 셋은 우리의 현주소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선 앞의 두 명은 임기가 돼가는 노무현정부 평가의 핵심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할 강기훈이라는 이름은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주홍글씨이다.
1991년 노태우 정부의 공안정국에 맞서 많은 청년들이 분신 등으로 저항했는데, 김기설씨도 서강대학교에서 분신을 했다. 그러자 성직자라는 사람이 나서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음모설을 제기했고, 공안당국은 강기훈씨가 분신의 배후로 유서를 대필했다고 주장했다. 이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강씨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 부결된 일심회 관련자 제명안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과거사 진상작업은 유서가 김씨 자신이 쓴 것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고, 이에 강씨가 법원에 재심청구를 했다는 기사였다. 이처럼 군사정권의 조작사건들의 진실을 밝혀내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 것은 노무현 정부의 중요한 업적이다.
강기훈이 노무현 정부의 빛이라면 이시우라는 이름은 그림자이다. '민통선 평화기행'으로 유명한 평화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시우씨는 주한 미군기지와 민통선 지역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려 왔는데, 노무현 정부가 이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구속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이날 무죄판결한 것이다. 이는 2004년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도했던 노무현 정부가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아직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할 악법이고 이 법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가보안법 피의자라는 사실이 그들을 무조건 양심수로 만들어 주고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예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일심회 사건이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패배와 관련해 심상정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비대위는 그간의 당 지도부의 친북적 행동과 관련해 일심회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되어 있는 당 간부가 주요 당직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북한에 보고한 것은 해당행위라며 제명조치해야 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수파인 자주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정당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있는 동료를 제명하는 것은 냉전적 공안논리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비대위의 혁신안을 부결시켰다.
물론 개인적으로 여러 번 주장해 왔듯이 설사 그것이 말도 되지 않는 주체사상이라 할지라도 모든 사상은 보장되어야 하며 광화문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심회 사건처럼 당내 동향을 분석해 북한에 보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국가보안법과 상관없이 당연히 징계해야 할 사안이다. 사실 국가보안법에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이 같은 정보를 넘겨줬다고 하더라도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돼야 한다.
■ 이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파가 기이한 논리로 혁신안을 부결시킴으로써 민노당은 친북당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마디로, 민노당은 자살을 한 것이다.
이번 부결에 실망해 탈당을 선언한 노회찬 의원 이외에도 심상정 단병호 의원 등 차세대 스타들, 그리고 아직도 주체사상 내지 민족지상주의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주파를 제외한 나머지 당원들은 이제 민노당의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탈당을 해 북한식의 왕조체제 옹호와는 거리가 멀고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야 한다.
민노당은 이제 죽었다. 민노당의 죽음에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근조!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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