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화재 무방비와 초동 대처 실패가 결국 국보 1호 숭례문까지 불태웠다. 10일 불이 난 후 소방당국은 숭례문 내부 설계도도 확보하지 못하고 화재 상황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등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화재 발생과 진압
불은 오후 8시45분께 남대문 시장 방향 2층 누각에서 일어났다. 남대문 시장에서 카메라 가게를 운영 중인 임모(27)씨는 “8시45분께 숭례문 쪽에서 연기가 계속 피어 올랐다”며 “인근 상인들 모두 불이 난 것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소방 당국은 오후 9시55분에 화재 비상 2호, 10시32분에 한 단계 낮은 비상 3호를 발령했으며 소방차 50여 대와 소방관 130여명이 출동해 고가 사다리와 소방 호스 등을 이용해 진화작업에 나섰고 1시간 여가 지난 오후 9시40분께 큰 불은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숭례문 누각 아래 부분에서는 밤새 흰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 양은 더 많아졌고 불길도 금방 잦아들지 않았다. 그리고 11시 50분께 해체 작업에 착수했으나 12시5분께 추가 화재가 일어난 후 급속히 번지면서 결국 12시 50분께 붕괴됐다.
소방 당국은 화재진압 초기부터 붕괴 위험 때문에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물을 위에서 아래로 뿌려야 하는데 무너질 위험이 있어 진화에 어려웠다”며 “바닥은 얼었고 불이 처음 난 것으로 보이는 2층 누각 안은 불길이 꺼지지 않았고 뜨거운 물이 계속 떨어져 접근조차 힘든 상태였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할 수 없이 아래쪽에서 위쪽 대각선 방향으로 2층 누각을 향해 물을 뿌렸다.
앞서 소방 당국은 불씨 제거를 위해 숭례문 현판 일부를 잘라냈으며 지붕 내부에 남아있는 불씨를 잡는데 주력했다.
초동조치 미흡
진화 작업이 이렇듯 어려움을 겪은 데에는 소방 당국의 초동 조치가 미흡한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후 1시간이 지나면서 “큰 불길이 잡혔다”며 잔불 처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기가 잦아들지 않았고 뒤늦게 소방차와 소방 인력을 늘렸고 지휘 책임도 중부소방서에서 서울시소방방재본부장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발생 장소와 원인을 밝히기 위해 꼭 필요한 숭례문 설계 도면 조차 없이 불 끄기에 나섰고 결국 숭례문 상판 등 내부 구조물을 도끼 등으로 부술 수밖에 없었다.
소방 당국은 불이 난지 2시간30분이 지난 오후11시30분이 지나서야 추가 화재를 막기 위해 문화재청으로부터 숭례문의 설계 도면을 구했고 문화재 해체 승인을 얻어 즉시 숭례문 2층 누각의 기와 일부를 해체하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도 붕괴 위험 때문에 소방 인력 접근이 어려워지면서 선뜻 나서지 못했고 결국 밖에서 물 뿌리기만 계속 했다.
경찰의 현장 처리 역시 허점 투성이였다. 경찰에 화재를 처음으로 신고한 택시기사 이상권(45)씨는 “수상해 보이는 남자가 한 동안 숭례문 옆 잔디밭에 서 있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저 사람이 수상하다고 말을 해줬지만 경찰은 못 들은 척 했다”며 “단암빌딩 쪽으로 달아나는 그 사람을 내가 직접 쫓았지만 골목에서 놓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화재원인
화재가 발생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화재를 신고한 이상권씨는 “8시45분께 서울역에서 숭례문 방향으로 가면서 숭례문을 끼고 도는데 키 170㎝에 항공 점퍼와 검은색 등산용 바지와 운동화를 신은 50대 초반 남자가 쇼핑백을 들고 숭례문 쪽으로 길을 건넜다”며 “그 남자가 숭례문 옆 계단으로 올랐는데 잠시 후 숭례문에서 빨간 불꽃이 튀면서 연기가 피어 올랐고 쇼핑백은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당초 “일반인의 현장 접근이 어렵다”며 방화보다는 조명 시설의 누전으로 인한 화재 쪽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 본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누전에 의한 화재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며 누전 가능성을 배제했다.
문화재청은 2005년 숭례문을 일반인에 공개한 뒤로 별도로 폐쇄회로(CC)TV도 설치하지 않았고 경비를 담당한 사설경비업체도 불이 난 시각에 경비 요원을 배치하지 않아 방화 가능성은 상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상준 기자 이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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