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노는 돌멩이로/ 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 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란 구절이 든 70년대 저항시 ‘한국의 아이’로 유명한 황명걸(73) 시인이 자선(自選) 명시 50편에 직접 그린 그림을 붙인 시화집 <황명걸 시화집> (민음사 발행)을 냈다. 황명걸>
한용운 정지용 김광섭 윤동주 오장환부터 서정주 김춘수 천상병 고은 신경림 이성복 기형도 정호승까지 한국 현대시 100년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정지상 김육 괄허의 옛 시가와 장사익씨의 노랫말, 일본 하이쿠를 보탠 50편에 일일이 시화나 삽화를 곁들였다.
1962년 등단 이래 세 권의 시집만 낼 만큼 과작(寡作)해온 시인은 “암 투병 중이던 근 몇 년 동안 왜 더 좋은 시를 쓰지 못했던가 깊이 회의하던 중 작고 시인들의 명시를 곰곰이 되읽으며 위안을 얻었다”며 “예전엔 좋은 시란 곧 새로운 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입에 붙고 가슴에 남아서 두고두고 곱씹게 해야 진정 좋은 시인 듯싶다”며 출간 계기를 밝혔다.
고교 시절 개인 회화전을 열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부친의 반대로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황씨는 90년대 초반 북한강변에 갤러리 카페를 여는 등 평생 그림에 애착해 왔다.
황씨와 오랜 친분이 있는 신경림(72) 시인은 “서울대 불문과를 다니던 당시 황 시인은 그림 잘 그리는 학생으로 통했고, 가끔 모딜리아니며 피카소 등의 화집을 구해와 설명과 함께 보여주곤 했다”고 회고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였던 그가 실직 후 이내 대기업에 채용돼 정년을 마친 것도 그림에 대한 비범한 실력과 안목 덕분이었다.
황씨는 이번 책 자서에 “지난 시절 성스러운 시업(詩業)에 우둔하게 매달리지 않고 재능을 보였던 그림 그리기에 매진하였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자주 생각하곤 했다”는 회한을 적기도 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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