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하던 구 소련 국가들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민주주의 확산 정책 실패를 인식하고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지난달 24일 윌리엄 팔롱 미 중앙사령부 사령관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도착,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을 만났다.
팔롱 사령관은 “방문 목적은 냉각된 양국 관계의 회복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즈벡에 미 공군기지를 재건하고 전투기들이 우즈벡 영공을 통과하는 권리를 되찾으려는 논의는 없었다”고 말해 군사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방문은 단순한 양국관계 개선 차원이 아니라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미 외교정책이 카스피해 지역에서 수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우즈벡의 관계는 2005년 우즈벡 동부 안디잔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를 유혈 진압하면서 급속히 냉각됐다.
미국은 이를 강력히 비난했고 우즈벡 정부는 자국에 주둔 중이던 미 공군기지의 퇴거를 명령하면서 맞섰다. 이후 카리모프 대통령은 반정부 인사들을 대거 투옥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독재를 이어오고 있고, 지난해 12월 3선(임기 7년)에 성공하면서 올해로 집권 19년째를 맞고 있다.
미국의 비난이 계속되자 카리모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를 강화했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이 우즈벡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 외에도 운송 인프라 구축, 군비 확장, 무역 증진 등에 눈독을 들이자 조급해진 미국이 우즈벡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다른 구 소련 국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량 매장된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에서는 민주주의는커녕 야당과 언론을 통제하는 독재정치가 지속되고 있다.
2003년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등 구 소련 국가에 친서방 정부가 수립된 후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궁극적 목표는 전세계 전제정치를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공언했던 게 머쓱할 정도다.
부시 정부도 더 이상 ‘민주주의 확산’ 타령만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에너지 자원과 군사기지 확보 등 현실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