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 문이당
설날이다. 떠났던 사람들 집을 찾아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서설이라도 내렸으면 싶다. 김주영(69)의 소설 <홍어> (1998)를 꼭 1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그의 표현대로 ‘진펄에 개구리 뛰듯’ 눈밭에서 가오리연 날리며 뛰어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홍어>
눈이 툇마루 위에까지 내려 쌓여 방문조차 여닫기 힘든 산골마을. 열세살 소년 세영이와 어머니 단 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말로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다니는 큰 새’ 같은 홍어처럼, 연줄을 끊고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가오리연처럼, 그들을 떠난 아버지를 어머니는 5년 동안 기다리며 살고 있다. 어머니는 때로 세영에게 회초리를 들고 나서는 ‘제사상에 떨어지는 촛농처럼 서럽게’ 흐느끼지만, 삯바느질로 강인하게 삶을 이어간다.
말린 홍어 한 마리 부엌 문설주에 그을음 뒤집어 쓰도록 걸어두고. 그 외딴 집에 낯선 사람들 하나둘 찾아든다. 폭설 내리던 날 도둑처럼 나타난 비렁뱅이 소녀 삼례는 문설주에 걸려있던 홍어를 먹어치우고, 건사해준 어머니와 그에게 사춘기 소년의 감정을 느끼던 세영을 떠나 읍내 술집 색시가 된다. 여름에는 그 삼례를 찾는 한 남자가 오고, 다시 겨울이 왔을 때는, 빨간구두를 신은 여자가 아이 하나를 업고 막차를 놓쳤다며 그 집을 찾아든다.
여자는 아이를 두고 떠나버리는데, 어머니는 목에 걸린 북어포를 빠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 아이가 아버지의 아이임을, 세영의 띠동갑 동생임을 진작에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맞기 위해 집단장을 한다. 세영을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내 등을 밀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분이 너그 아부지다. 가서 인사 올리그라’” 아버지가 돌아온 이튿날 새벽, 간밤에 ‘눈뿌리가 시리도록’ 내린 눈길 위의 고무신 발자국을 보고 세영은 이번에는 어머니가 떠나버린 것을 안다. ‘신발을 돌려 신었으므로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고’.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에게서 알몸뚱이 받아 가오리연처럼 살아온 우리의 지난 한 시절, 흑백사진처럼 기억에서 바래가고 있는 그때의 삶을 <홍어> 만큼 장인적인 미학으로, 눈처럼 환하면서도 눈물겨운 문장과 이미지로 그려낸 작품 드물다. 설날, 어른들께 큰 세배 올리자. 홍어>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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