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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연극과 배우의 존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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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연극과 배우의 존재 선언

입력
2008.02.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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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극단 76단’ 기국서의 ‘햄릿 시리즈’는 군사정권 아래 횡행한 폭력과 학살의 야만성에 맞서 지식인의 저항의식을 보여준 대표작이었다. 연극이 정치적 의식과 사회적 발언력을 잃고 협애해진 이 시대 ‘햄릿’은 다시 연극의 사회를 향한 발언이자 연극행위를 하는 이들의 존재 선언이 될 수 있겠는가?

하필 ‘햄릿’이 그 사명과 계기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질문에 연극행위의 본질적 고민의 시작과 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가면을 쓰고 살 것인가, 맨 얼굴로 살아갈 것인가’하는 의미로 바꿔볼 수 있다.

연극과 배우의 운명이 역할의 가면을 씀으로써 사회의 가면을 벗기고 인간성과 권력 도처의 기만과 위장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한 극단이 ‘햄릿’을 선택한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연극행위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에 맞닿게 된다.

‘극단 76단’ 출신이자 연출가 기국서의 후배로서 연극하는 정치의식과 청년정신을 상속받은 박근형은 이번 공연에서 분명히 이를 의식한다.

그냥 ‘햄릿’이 아니라 <골목길 햄릿> 이라 한 것은 반기성문화의 기치를 걸고 극단 특유의 남루한 외형으로 셰익스피어를 소화할 것임을 커밍아웃하고 있는 셈이다.

화려한 의상과 스펙터클의 눈요기가 그야말로 극성의 핵심이 되는, ‘코스튬 플레이’ 속성을 가진 정통고전극 햄릿을 박근형은 저자거리 말로 ‘딸랑 이거?’라 할 만큼 최소한의 물량으로 상연해간다.

대관식 왕좌와 침상으로 사용되는 다섯 개의 상자형 나무의자, 햄릿의 고뇌와 독백공간으로 쓰이는 한 개의 의자만으로 극은 공연된다. 의상은 평상복에 가깝고 국상기간이므로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정도다.

공간을 깁고 후리는 연희성, 희극성과 비극성에 엇박을 놓는 리듬감 등 극단 골목길 연극에 기대되는 요소들이 슬며시 담겨 있다.

그 나이쯤 되면 남성호르몬이 줄어 중성화되는지 여배우가 맡아도 자연스런 폴로니어스 역 해석이 눈에 띄고, 햄릿에 대한 연민과 자기불행으로 부서진 오필리어의 소네트를 우리 정서와 말법으로 다듬은 장면이 순연하다.

인간성의 윤리적 파괴상을 고발하고 한 사회의 오염도를 측정하며, 연극정신을 다짐하고 가난을 영성체처럼 받아들이던 광대 정신은 이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어떤 연극인들은 무자년 시궁쥐의 운명처럼 지하에서 ‘권력이야말로 시대의 종양이지(햄릿)’를 읊으면서 ‘악취 나는 세상’에 대한 예각을 벼리고 있을 것이다.

연극과 배우의 존재조건을 화두로 틀어쥔 이번 <골목길 햄릿> 은 극단 신진 대부분으로 채워진, 설익었으나 충만한 연극정신을 다짐하는 자리다. 2월 17일까지 게릴라 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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