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선생님의 시는 두꺼운 사전에 한참 끼여 있다가 발견된, 잘 말려져 잎맥만 또렷한 나뭇잎처럼 군더더기가 없습니다.”(황인숙 시인)
“선생님께선 시인은 항상 시를 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한참 시를 안쓰던 시절에도 늘 그 말씀을 떠올렸습니다.”(함민복 시인)
오규원 시인(1941~2007)의 1주기인 2일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선 그가 20년간(1982~2002) 재직한 서울예술대학 출신 제자들이 주도한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유고시집 <두두> (문학과지성사 발행) 출간 기념회를 겸해 2시간20분 동안 열린 이 행사엔 서울예대 동료 교수로 고인과 오랜 친분을 쌓았던 소설가 최인훈씨, ‘문지 1세대 동인’을 함께 꾸렸던 평론가 김주연 김치수씨, 가르침을 입었던 시인 이창기 박형준 이원 황병승 최하연 이은림 곽은영씨와 소설가 신경숙 강영숙 안성호 천운영 편혜영 윤성희씨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두두>
최인훈씨는 추모사에서 제자들의 졸업 여행에 동행했을 때 고인과 겪은 세 일화를 전하면서 “유사 이전에도 말이 있었으므로 말은 곧 시(詩)고 모든 이가 시인일 텐데, 이것이 오 시인의 날(生)이미지 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물어보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김주연씨는 “오 시인은 광고, 금융 등 자본주의적 현상을 가장 먼저 시에 반영하는 등 세계의 움직임에 민첩하게 반응한 현실주의자이자, 그런 변화를 있는 그대로의 날이미지로 잡아내겠다는 불가능에 애처로울 만큼 집착한 이상주의자”라며 “병석에서까지 불가능에 기꺼이 도전했던 그는 영원한 문학청년이자 거룩한 순교자”라고 말했다.
시인 제자들의 유고작 낭송, 추모 동영상 상영, 음악ㆍ무용 공연 등으로 꾸며진 이날 행사엔 출판사 측이 유족에게 유고시집을 전달하는 순서가 마련됐다. 시집 제목 <두두> 는 고인이 날이미지와 같은 맥락에서 주창한 두두물물(頭頭物物) 시론에서 비롯했다. 두두>
두두물물은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진리다)이란 선가(禪家)의 말이다. 해설을 쓴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는 “고인이 따로 책으로 묶으려고 1995~2001년 쓴 짧은 시편 33편을 1부 ‘두두’에, 비교적 길게 쓴 17편을 2부 ‘물물’에 담았다”며 “이 시집은 최소한의 언어로 사물의 연쇄적, 존재론적 움직임을 포착하려 했던 선생의 필생 작업의 결정체”라고 평가했다.
고인의 제자들은 이날 향후 추모사업을 담당할 ‘오규원 문학회’ 발족을 알렸다. 이창기 시인이 읽은 발기문엔 “20년간 100명에 가까운 등단 작가를 길러낸 고인의 가르침을 기록ㆍ연구하는 작업과 그의 문학적 명성이 시대적 사상과 유파에 휘둘리지 않고 온당하고 균형있는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문학회의 몫이 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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