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일본 도쿄 시부야구 하라주쿠 거리의 한 매장 앞. 앳된 청년이 손가락으로‘펜 돌리기’묘기를 선보이자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
이 시범은 지난해 7월 발족한 ‘일본 펜돌리기협회’와 완구업체인 다카라토미가 공동 개발한 ‘돌리기 전용 펜’을 시판하기 앞서 판촉행사로 마련됐다. 관중들은 즉석에서 전용 펜을 구입하거나 펜돌리기협회에 가입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일본에서 펜 돌리기 붐이 30년만에 다시 일고 있다. 일본 펜돌리기협회에는 8세에서 80세에 이르는 회원 800여명이 가입, 기초 강좌 개설과 동영상 배포 등 펜 돌리기를 보급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도 다양한 사이트가 개설돼 붐을 부활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협회는 다음 달 중 정식으로 전국 대회도 열 계획이다. 펜 돌리기를 한가한 손가락 장난에서 고도의 손가락 기술을 겨루는 경기로 승격시키기 위한 그랜드 플랜의 일환이다. 상업적 후각이 발달한 일본 기업들은 이 열기를 이용, 전용 펜 개발에 나서는 등 상업화를 서두르고 있다. 관련 업계는 일본 국내에 적어도 수만명 이상의 펜 돌리기 애호가가 있으며, 잠재적 인구는 수십 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펜 돌리기 열풍이 분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주로 재수학원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로 순식간에 퍼졌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펜을 돌리는 젊은이들의 ‘산만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기성세대의 거부감 등 때문인지 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펜 돌리기가 ‘재수생 돌리기’라고도 불린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러나 펜 돌리기 바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중학교 교사인 긴도 히데아키(近藤英章)씨가 97년 ‘나의 펜 돌리기 역사’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 펜 돌리기의 이론화와 애호가 양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은 붐의 부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 등 동화상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펜 돌리기 묘기를 직접 볼 수 있게 되면서 국경을 초월한 애호가 집단이 형성됐다. 특히 2004년 한국의 펜 돌리기 클럽인 ‘펜돌사(PenDolSa)’가 절묘한 기술이 담긴 동영상을 배포한 것은 일본 애호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며 펜 돌리기 활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일본 사회는 격투기인 K1 등 일상적인 것들에 새로운 형식을 씌워 제도화 혹은 상업화하는 데 남다른 장기를 발휘해왔다. 만인의 심심풀이 손장난인 펜 돌리기가 일본에서 어떤‘물건’으로 진화할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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