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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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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입력
2008.02.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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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 생각의나무 "떠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오늘은 입춘이다. 상춘(賞春), 봄을 즐기기에는 이르지만, 불어오는 동풍이 얼었던 땅을 녹인다는 봄의 기운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는 있는 절기다.

성급하게 개화가 기다려지기도 하면서, 윤대녕(46)의 아름다운 단편소설 '상춘곡'이 떠오른다. 2000년 초봄에 윤대녕과 '상춘곡'의 배경인 전북 고창 선운사로 문학기행을 갔었다. '상춘곡'에는 한 여인과의 10년 인연을 돌이키며 벚꽃(혹은 동백꽃)의 개화를 보러 선운사를 찾아가 묵고 있던 화자가 우연히 동백장여관 식당에서 고 미당 서정주 시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미당이 그에게 묻는다. "그럼, 동백은 폈던가?" "아직 안 피었습니다." 미당은 대답한다. "음, 그래? 하지만 나는 벌써 보고 가네." 미당이야 이미 저 멋드러진 시 '선운사 동구'에서 아직 피지 않은 동백이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남았음을 이야기했다.

미당의 말마따나 벚꽃이 만개하고 동백이 떨기째 낙화하는 것은 마음 속의 일일 수 있다. '상춘곡'은 만남과 헤어짐의 10년 세월을 건너서야 사람의 인연이나 사랑, 혹은 진실이란 것이 "멀리서 얘기하되 가까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선운사 목조삼존불이 흐린 날 경내 전체에 향내가 퍼지게 만들 듯, "마음 흐린 날 서로의 마당가를 기웃거리며 겨우 침향(沈香)내를 맡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된 것"임을 깨닫는 이야기다.

주인공 사내는 미당이 들려준 침향 이야기, 그리고 불에 탔다가 재건하려 했으나 재목이 없자 타다 남은 것들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지어 더 아름다운 걸작으로 다시 태어난 선운사 만세루 이야기에서 한 깨달음을 얻는다.

윤대녕의 소설은 "떠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는 듯 언제나 길 떠나는 자들의 이야기다. 시적인 미문, '존재의 시원(始原)'에 대한 탐구라고 명명되는 우리 삶의 근원적인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구조로 그는 1990년대 한국문학의 상징이 됐다.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는 그의 이런 대표작들을 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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