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지음세계사 발행ㆍ224쪽ㆍ1만원
1997년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이명랑(35ㆍ사진)씨는 <꽃을 던지고 싶다> <삼오식당> <나의 이복형제들> 등 영등포시장-작가가 실제 나고 자란 곳-을 무대로 한 일련의 소설로 이름을 얻은 작가다. 나의> 삼오식당> 꽃을>
백화점 문화센터의 라틴댄스를 배우며 억압에서 탈주하려는 주부의 이야기 <슈거 푸시> (2005)와 데뷔 10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입술> (2007)에 이어 이씨가 내놓은 다섯 번째 장편은 ‘날라리 여고생’ 다섯 명이 중심인물이다. 계간 <작가세계> 2004년 봄호부터 6회에 걸쳐 <키싱 피버> 란 제목으로 연재한 것을 작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책으로 펴냈다. 키싱> 작가세계> 입술> 슈거>
낮은 성적 때문에 실업계 여고로 진학한 ‘나’는 등굣길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왁자한 음담을 나누다가 2학년 선배 ‘주먹’에게 걸려든다.
학교 화장실에서 선배 패거리에게 린치를 당하려는 찰나 ‘나’는 주머니칼을 들고 발악하고, 그걸 간질 발작의 징후로 여긴 선배들은 자리를 피한다. 하지만 수다쟁이 친구 ‘은정’이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어느새 나는 2학년들을 한 방에 쓸어버린 대단한 년이 되어 있었다.”(47쪽)
이후 소설은 ‘나’를 비롯한 다섯 왈패의 일탈기다.
취재에 바탕한 정교한 리얼리즘으로 정평있는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2년여 간 학교, 홍대 클럽, 신촌, 동대문운동장, 소년원 등을 돌며 10대들의 현실을 탐문했다. 덕분에 ‘삐딱한’ 청소년들의 말투, 행동, 심리 등이 글 속에 살아 팔딱댄다. 소설이기 앞서 이들에 대한 뛰어난 생태 보고서로도 제 노릇을 충분히 해내는 작품이다.
그 보고서가 딱딱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여자 성석제’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씨는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점차 일탈의 강도를 더해가는, 단순하고 뻔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변주한다.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듯 한 장면을 다각도로 거듭 보여주거나, 예측 불가한 각도에서 들이대는 카메라처럼 이야기를 낯설게 풀어가기도 한다. 다른 시공간에서 찍은 장면들을 재배치해 강렬한 효과를 내는, 영화의 몽타주를 닮은 부분도 있다.
읽는 내내 흥미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될 수 있는지 미처 배울 기회를 갖기도 전에… 금밖으로 내몰”(222쪽)며 ‘날라리 되기’를 권하는 비정한 사회를 꾹 짚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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