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까지 감수한 회장님(존 그레이컨)의 방한(지난달 9일)은 결국 자충수였나.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며 반전을 노렸던 론스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맞게 됐고, 새 선장(HSBC)을 갈구하던 외환은행호(號)는 장기 표류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법원이 1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릴 때만 해도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항소를 포기하면 판결이 확정돼 '법적 불확실성 해소'를 원칙으로 내세웠던 금융감독 당국도 어쩔 수 없이 외환은행의 매각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게 어긋났다. 무엇보다 론스타가 '결백 입증'이라는 명분에 떠밀려 항소(법적 불확실성)를 택했고, 금융감독 당국은 판결이 나자마자 긴급 브리핑을 통해 "외환카드 주가조작뿐 아니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사건에 대한 모든 법적 공방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는 달라질게 없다"고 못박았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사건은 언제 선고가 내려질지 예측도 힘든 상황이다.
론스타 입장에서 그나마 차선으로 여길만한 금융감독 당국의 매각(지분처분)명령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관련 법 등에 따르면 유죄 판결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에 문제가 생겨 지분 10%를 제외한 나머지(41.02%)를 팔아야 한다. 매각심사가 아니라 명령인 점이 껄끄럽긴 하지만, 론스타는 이를 통해 HSBC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는 뜻은 이루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은 게 현실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부적격 은행 대주주에 대한 지분처분 명령은 현행법 상 의무 규정(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당국이 재량권(할 수도 있는 것)을 갖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지분처분 명령은 자칫 '먹튀' 논란에 불을 지필 수 있다.
더 큰 암초는 헐값 매각 의혹이다. 주가조작 사건은 대주주 자격과 관련 있지만, 헐값 매각 의혹은 판결 결과에 따라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를 무효로 몰아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 결국 4월 말까지 외환은행 매각을 끝낸다는 론스타와 HSBC의 계획은 차질을 빚거나 아예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다만, 20일 방한하는 스티븐 그린 HSBC 회장이 HSBC 아ㆍ태지역 회장을 지낸 데이비드 엘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을 만나 '빅딜'을 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HSBC 관계자는 "예정된 둘의 만남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지금까지의 통합작업을 계속 추진하면서 좋은 소식을 기다릴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는 눈이 많아 정치적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면 3년 이상 장기화돼 HSBC와 론스타의 협상이 깨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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