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블레이크 지음ㆍ박중서 옮김까치 발행ㆍ279쪽ㆍ9,800원
때로 현실이 더 영화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 게다.
화재진압을 하던 중 무너져내린 지붕 대들보에 깔린 채 무려 6분 동안 산소공급이 차단되면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소방관이 10년이 지난 어느날 문득 긴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16시간 동안 거의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이 책은 2005년 4월 미국 뉴욕주 버팔로시에서 실제로 일어나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 유명 매체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경이적인 사건을 다룬 실화 다큐멘터리이다. 주인공은 버팔로시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도니’, 도널드 조지프 허버트(1961-2006).
현대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이 사건의 주인공을 어린시절부터 촘촘히 추억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한다.
아일랜드계 수수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도니는 강둑에서 잉어를 낚고 자전거 튜브로 만든 뗏목을 타고 구불구불한 하천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겼다.
동네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마을에서 패싸움을 벌이면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동네 주민들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주고 신문배달로 용돈을 버는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19세때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자인 아내, 린다와 결혼하고 4명의 아들을 줄줄이 낳았으며 모험과 남 돕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이끄는 대로 소방관이 됐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누구보다 먼저 출동했던 열혈 소방관은 1995년 12월 버팔로시가 떠들썩할 정도로 컸던 화재현장을 진압하던 중 대들보에 맞아 산소탱크는 벗겨지고 목이 90도로 앞으로 꺾인채 발견됐다. 중증 무산소증 뇌손상.
식물인간인 남편과 4명의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팍팍한 세월 속에서도 아내 린다는 유명 의료진과 대체요법을 쉴새 없이 찾아 다녔으며 남편의 의식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믿음은 10년이 지난 어느날, 기적처럼 현실이 됐다.
오랜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도니는 처음엔 10년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내리 16시간을 그는 막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인간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열정으로 쉴새없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사고당시 너무 어려서 ‘한번도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는 막내아들은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도니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2006년 2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도니의 아내 린다는 ‘기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한 방송사 리포터에게 “그렇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 지 다시 한번 말해주기 위해 의식 저편에서 마지막 힘까지 불살랐을 것이라는 답변이다. 만일, 내게 단 하루밖에 생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나는 과연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