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블룸 지음ㆍ손태수 옮김 / 들녘 발행ㆍ928쪽ㆍ4만3,000원
미국의 저명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78ㆍ사진)이 ‘언어의 천재’ 100명을 꼽고 그들의 전기(傳記) 및 작품세계에 대해 비평했다.
100명의 천재는 대부분 문학적 천재이고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니체, 키에르케고르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경전 집필자 야훼스트(구약성서), 무함마드(코란) 등이 포함됐다.
천재성이 엿보일지라도 생존 작가는 “(그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제외했다. 주제 사라마구, 제프리 힐 등이 그렇다.
블룸은 본문 앞뒤로 30쪽에 가까운 서문 및 발문을 붙이고 ‘천재’를 명확히 규정하는 데 공들인다. 그는 ‘천재는 시대가 만들어낸다’는 류의 견해를 단호히 물리친다. “(그런) 주장을 펴는 것은 문학성이나 숭고한 정신 또는 사상을 희석해버릴 뿐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천재성은 오로지 내면에서 비롯한다.
블룸은 각각 유대교, 기독교의 신비주의 유파인 카발라와 영지주의를 끌어들여 문학의 천재성을 설명한다. 그는 “영지주의란 창의적인 정신을 신학, 역사, …신성, 이 세가지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지식 체계”라며 셸리, 위고, 예이츠, 릴케, 블레이크 등 자신이 천재로 지목한 작가 중 다수가 영지주의자였음을 알린다.
이런 유비(類比)로써 블룸은 천재를 가늠할 잣대를 제시한다. 먼저 “창조적 자아를 위한 자유와 정신적 의식의 확장을 위한 자유”를 얼마나 성취했나 따져야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한 작가들에게 재차 서열을 매기는 또다른 지표가 있다. 생명력이다. 블룸은 최고의 천재 셰익스피어와 단테를 가르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단테는 <신곡> 을 넘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로 건너오지는 못한다. …셰익스피어는 문학을 삶에 적용한, 즉 문학을 통해 인식의 수준을 높이려 한 최고의 사례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신곡>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대항해 문학에 대한 순수한 미학적 접근을 강조해온 저자의 지론이 이 책에서 투명한 결정(結晶)을 이룬다.
블룸의 천재 100인은 각각 10명씩 묶여 소개된다. 10개 장(章)은 카발라에서 중시하는 개념들-케테르(왕관), 호크마(지혜), 비나(사유능력) 등등-을 각각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런 분류는 출판상 편의일 뿐, 대상 작가 모두가 10개의 덕성을 고루 갖췄다고 블룸은 덧붙인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데 있어 저자가 쳐놓은 울타리를 무시해선 안된다. 블룸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작가들이 서로에게 어떤 문학적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져보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이 비교 작업은 무시로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세르반테스, 몽테뉴, 밀턴,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자식’이고, 그런 셰익스피어조차 초서에게서 자유롭지 못했다.
고전주의자를 자임한 T.S.엘리엇을 깎아내린 월터 페이터의 비평은 조이스, 예이츠, 버지니아 울프 등 일군의 모더니즘 작가 탄생의 물꼬를 텄다.
이처럼 독특한 문학적 계보를 작성하며 블룸은 “천재가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콘텍스트에서보다 훨씬 더, 언제나 변함없이 이전의 천재로부터 받은 자극에 의해 독특하게 생성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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