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주삭 지음ㆍ정영목 옮김문학동네 발행(전2권)ㆍ444, 356쪽ㆍ각권 1만1,000원
“나는 책도둑을 세 번 보았다.”(1권 15쪽) 이 소설의 화자는 사신(死神)이다. 그는 죽은 자의 영혼을 수습하러 간 자리에서 ‘리젤 메밍거’라는 소녀를 세 차례 만났다는 말로 이야기를 펼칠 세 개의 큰 기둥부터 세운다.
이 죽음의 기둥들은 독일 몰힝의 소읍 ‘힘멜 거리’와 1930년대 후반~40년대 전반이란 시공간을 떠받친다. 2차대전 나치 독일에서 한 소녀가 겪는 성장기로 요약되는 소설이겠다.
즉각 <안네의 일기> 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를 떠올리며 시큰둥할지도 모르겠지만 젊은 호주 소설가 마커스 주삭(33ㆍ사진)의 이야기 솜씨는 그리 녹록한 게 아니다. 인생은> 안네의>
주삭은 세 기둥에 10권의 책으로 그물을 짜서 건다. 그 제목 그대로 10개 장(章)의 표제가 되는 이 책들은 대개 리젤이 훔친 것이다. ‘책도둑’ 소녀가 처음 훔친 책은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 연유는 이렇다. 무덤>
공산주의자 아버지가 나치에 희생 당한 뒤 어머니는 리젤과 남동생을 힘멜 거리에 사는 후버만 부부에게 맡기려 한다.
하지만 몰힝을 향하던 중 남동생이 병사하고-여기서 사신은 리젤을 처음 본다- 리젤은 동생 시신을 매장하는 인부가 떨어뜨린 책을 ‘슬쩍’ 한다. 제목부터 음침한 이 첫 장물은 리젤을 죽음에 매어두고, 양부모와 가깝게 하며, 언어에 대한 욕구를 부풀린다. 수중에 책이 늘수록 그녀는 켜켜이 성숙한다.
비극적 성장소설에 ‘책 훔치기’라는 심을 넣음으로써 작가는 독자에게 슬픔과 미소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하는, 독특한 멜랑콜리를 선사한다.
본분을 잊고 처음 본 소녀에게 관심을 뺏긴 것을 후회하지만 내러이터는 ‘사신답게’ 객관적 태도를 취하며 감정의 쏠림을 경계한다. 책 속에 또다른 책을 집어넣거나 수시로 요약문을 삽입하는 등의 기발한 구성과, 시(詩)적 리듬을 실어나르는 문장은 작품을 읽는 또다른 묘미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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