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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교육은 엔진도 목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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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교육은 엔진도 목수도 아니다

입력
2008.01.3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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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경제학 교수와 1년쯤 전에 식사를 하다 귀가 솔깃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 나라가 부동산 광풍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한국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을 때 이 교수가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두 가지 방법은 교육 시장과 의료 시장의 개방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한 그는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돈 있는 사람들이 마음놓고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그 떡고물이 돈 없는 사람들한테도 돌아간다, 당장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교육과 의료다, 부자들 실컷 돈 써 가며 자녀들 교육시킬 수 있게 마당 깔아주고, 그들이 있는 돈으로 자기 몸 돌볼 수 있게 의료시장 개방하면 성장률 몇 %는 거뜬하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였다.

인수위가 만든 영어 공교육 실천 방안을 보며 그 말이 생각났다. 드디어 교육이 한국 경제의 엔진이 되는건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수업은 영어로만 하고 국가 차원의 영어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부족한 영어교사 충원을 위해 5년 내에 2만3,000명의 영어전용교사를 채용하겠다고 한다.

엄청난 고용 및 파급효과가 있겠다. 삼성전자 직원 수 1/4 만한 국가적 영어기업이 생기는 셈이다. 백화제방이다. 영어 잘 하면 군대 복무 안 해도 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기러기 아빠가 가슴아프다는 인수위원장은 '오렌지'는 정확한 발음 표기가 아니므로 '아린지'로 표기할 수 있도록 외래어표기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외국서 학위 따고도 영어회화 못하는 박사를 한탄했다는데, 그게 과연 한국의 영어 공교육 잘못 때문인가. 묻고 싶다, 영어 잘 하면 군대만 안 가도 되는 게 아니라 비싼 집 가진 부모님 골치 썩이는 종합부동산세 안 내도 되도록 납세 의무도 면제해주면 어떻겠냐고.

아이들에게 영어 잘 가르쳐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데 반대할 한국의 부모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방안을 환영하기보다, 손을 뒤로 돌려 앞으로 더 들어갈 과외비부터 셈해보고 있을까. 인수위가 그렇게 나올 때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이제는 영어구나, 영어가 저 우리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지고의 기준이 되겠구나, 인수위원들부터 아이들 조기유학시키지 않았나.

꼭 10년 전인 1998년에 영어 공용화 논쟁이 벌어졌었다. 논쟁을 촉발시켰던 소설가 복거일은 물었다.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다른 쪽엔 조상들이 써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어서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보고…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겠는가?" 이미 많은 이들이 이 논리의 허구성을 공박했건만, 이명박 당선인이 "영어를 잘 하는 나라 국민들이 영어 잘 하지 못하는 나라보다 훨씬 잘 산다"고 말한 데서는 똑 같은 논리가 감지된다.

인수위 방안의 문제는 그것이 한국 국민들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교육갈등과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영어 잘 하는, 하버드대의 첫 여성 총장 드류 길핀 파우스트는 지난해 10월 취임식에서 19세기 흑인으로는 최초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W E B 듀보이의 말을 인용했다.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수위가 우리 아이들 목수 만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종오 문화부 부장대우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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