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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앞둔 남대문 시장 "반값에 팔아도 마트만 찾으니…"

입력
2008.01.3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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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이번 설은 어느 때보다 잔인한 명절이 될 것 같다. 국내 주식은 연일 고꾸라지는 반면, 생활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 설을 맞는 서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주머니 사정이 힘들어질 때면 자연히 발길이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이다. 경제사정이 어려우니 '재래시장이 그래도 붐비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설을 일주일 앞둔 31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설 대목이요? 그런 거 없어진 지 한 2~3년 됐어요."

남대문시장에서 10년 넘게 농산물과 건어물을 팔아온 윤모(65)씨의 대답은 실낱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윤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 본동 상가를 중심으로 설을 준비하러 오는 손님이 많았는데, 요새는 명절 손님이 통 없다"면서 "시장에서 하는 고춧가루와 마늘, 건어물 등의 가격은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 훨씬 싼데도 사람들이 와서 사가질 않으니 미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고춧가루(1㎏ 기준)의 경우 남대문시장에서는 1만5,000~1만8,000원인데 반해 인근 백화점은 3만3,900원으로 두 배나 비쌌다.

또 백화점에서는 1만1,500원에 파는 마늘(1㎏ 기준) 역시 남대문시장에서는 8,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장사가 되지 않는 건 소비자들이 장보기 편리한 대형마트나 백화점, 온라인쇼핑몰 등으로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윤씨의 분석이다.

장사가 안되기는 정육점도 마찬가지였다. 남대문시장 '유일정육점' 주인 나형기(28)씨는 "5년 전만 해도 명절을 앞두고 국거리용 소고기와 부침용 돼지고기 등이 많이 나가 '대목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즘은 명절이라고 특별히 손님이 많이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005년 이후 쇠고기 값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예전엔 서민들이 명절 선물로 즐겨 찾던 수입 갈비 등을 이번엔 살 생각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나씨의 가게에서 판매되는 갈비 선물세트(2~3㎏)의 가격은 7만~15만원대. 20만원은 줘야 괜찮은 선물세트를 살 수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는 훨씬 저렴하지만 찾는 손님이 2005년 이전보다 30~40%나 줄었다.

비교적 고가인 제기용품은 더욱 상황이 어렵다. 남대문시장 그릇ㆍ도자기 도매상가에서 제기용품을 파는 상인 오모(28)씨가 지난해 12월부터 1월까지 판 제기세트는 달랑 하나.

오씨는 "가끔 가격을 묻는 손님은 있으나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보통 제기용품이 한 세트 당 30만~50만원 정도 하는데, 소비심리가 위축된 사람들이 더욱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남대문시장을 주로 찾는 손님 층도 많이 바뀌었다. 한때 남대문시장 매출의 40~50%를 차지했던 일본인 관광객수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외국인을 상대로 건어물을 파는 임모(35)씨는 "3~4년 전 한류 열풍이 한창일 때는 일본 관광객들이 와서 돌김을 많이 사갔는데 요새는 한류도 시들고 환율도 높아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며 "한국에 온 관광객도 인기가수 콘서트나 팬 사인회에 가지 시장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국인 손님 층도 변했다. 유일정육점 나형기씨는 "예전엔 근처 직장인들이나 주민들이 많이 왔으나, 요즘은 손님 대부분이 남대문시장의 식당 관계자나 상인들"이라며 "물건 사러 온 젊은 사람들은 이젠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매출이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떨어져 이젠 점포세 내기도 힘들다"면서 "다음 정부에서 서민경기와 재래시장을 살리는 정책을 많이 내놓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심혜이기자(중앙대 정치외교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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