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은 우리나라 증시에서 '보검(寶劍)'과 같은 존재다. 굴리는 펀드의 규모나 대중적 인기, 신뢰도에서 다른 경쟁사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보검이 '양날의 칼'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상승장에서 일으켰던 신드롬과 정반대의, 한국 증시를 한 칼에 날릴 수도 있는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30일 국내 증시에선 특이한 현상이 감지됐다. 공교롭게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다량 보유 중인 종목들이 주가 급락을 주도한 것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악재가 몰린 중국 관련주들에 미래에셋의 보유비중이 높다는 사실 자체가 투매심리를 부추겼다" "미래에셋이 펀드 환매에 대비해 현금비중을 늘린다는 소문에 미래에셋 대량보유 종목이 줄줄이 급락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드러난 결과보다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에 민감한 증시의 특성상, 당장 미래에셋이 흔들리진 않아도 향후 여파에 대한 우려 만으로 주가가 들썩인 셈이다.
이는 정보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 만의 얘기가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작 투매에 나선 것은 지난해 미래에셋을 따라 샀던 다른 투신사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비슷한 현상은 작년에도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23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모 펀드매니저가 선행매매로 거액을 챙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래에셋증권은 물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보유한 종목들이 급락하면서 전체 주가가 폭락했었다. 역시 미래에셋에 전체 증시가 휘둘린 사례였다.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지나친 쏠림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시에서 미래에셋 펀드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미래에셋의 투자지역에서 중국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중 쏠림' 탓에 국내 증시가 출렁일 때마다 '미래에셋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중국발 악재가 나와도 유난히 투자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에셋은 지난해 11월 이후 하락장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지분 5% 이상 보유종목 30개의 평균 하락률(-20.3%)은 종합주가지수 평균(-16.23%)보다 높다.
펀드 수익률 역시 상위 20위 안에 하나도 들지 못한다. 이는 미래에셋 만의 손실 외에, 지난해부터 급증한 '미래에셋 따라 하기' 세력의 손실로 더욱 손해가 커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쏠림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증가한 전체 펀드 판매잔액(약 62조원) 중 미래에셋 펀드가 거의 절반(약 30조원ㆍ48%)이나 됐다. 주가가 연일 바닥을 치는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29일 늘어난 국내 주식형펀드 순유입액(2,004억원) 중 53%(1,060억원)가 미래에셋 펀드에 몰렸다.
물론 이런 쏠림이 미래에셋의 잘못은 아니다. 한 경쟁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정교한 시스템도 갖췄고, '중국이 좋을 것'이라는 투자철학에 그 동안 고수익률로 입증한 성적표까지 매력 요소가 많다"며 "쏠림 현상은 미래에셋에 걸맞은 매력을 내놓지 못하는 경쟁사들의 문제이지, 미래에셋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미래에셋 관계자 역시 "솔직히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 버겁다"며 "강력한 경쟁사가 빨리 나타나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 리스크가 한국 증시의 재앙으로 이어질 지는 앞으로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얼마나 더 견딜 지에 달려있다"며 "섣부른 예측은 어렵지만, 최근 하락장이 한편으로 전체 투자문화의 건전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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