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오전 수원야외음악당에 있는 수원시향의 연습실. 슈만 교향곡 3번 3악장의 부드러운 선율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휘대 위에서는 앳된 외모의 이탐구(23ㆍ서울대 작곡과 3년)씨가 긴장된 표정으로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잠깐만요.” 카랑카랑한 독일어가 연주를 멈춰 세웠다. “그렇게 하면 다 잠들어버립니다. 음을 끌고 나가야죠. 음악을 듣는 청중이 꿈을 꿔야지, 지휘자가 꿈을 꾸면 안됩니다.”
지적을 당한 지휘자가 머리를 긁적이자 수원시향 단원들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예. 그럼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한국지휘자협회가 2001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지휘 캠프 현장이다. 올해가 7회째.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 열리는 이 캠프는 신예 지휘자를 발굴, 양성하기 위한 무료 캠프다.
대원문화재단이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 44명의 지원자 가운데 선발된 9명의 음악도들은 이곳에서 독일 막데부르크극장 음악감독을 지낸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학과장 크리스티안 에발트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대부분이 20대 젊은 음악도들로, 외국 유학 중에 캠프 참가를 위해 귀국한 학생도 있다.
“팔에 좀 더 탄력을 주세요.” “악보를 너무 많이 보는군요. 음악은 악보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어야 합니다.” “지휘는 경제적으로 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늘 당신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까 필요로 할 때 확실하게 사인을 주세요.”
참가자들이 번갈아가며 지휘대에 오를 때마다 에발트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연습실 뒤쪽에는 20여명의 청강생들이 악보를 펴놓고 앉아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연주하는 듯 지휘봉을 흔들기도 하고, 에발트 교수의 말을 꼼꼼히 메모하기도 했다. 청강생 가운데는 흰 머리의 신사도 눈에 띄었다.
휴식 시간이 됐는데도 에발트 교수는 막 차례가 끝난 차웅(24ㆍ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 3년)씨를 한 켠으로 불러 지도를 계속했다. 차씨는 “학교 오케스트라는 지휘해본 적이 있지만 프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본 것은 처음이라 긴장했다”면서 “일정이 빡빡해 힘들기도 하지만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고, 본토에서 오신 선생님께 세심하게 지도를 받기 때문에 음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에발트 교수는 “지휘자는 음악가 중 유일하게 자신의 악기를 원할 때 다룰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 “이 캠프의 가장 큰 의미는 지휘자 지망생들이 멋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휘자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오케스트라 앞에 섰을 때의 두려움과 떨림을 아직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는 “대체로 한국 학생들은 자신을 보여주는 것을 겁내는 경향이 있어 재능을 표출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한 뒤 “지휘자에게는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확실한 준비와 상상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캠프 참가자들은 직접 무대에서 지휘를 할 기회도 얻는다. 1일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수원시향 신예 지휘자 연주회를 통해 최수열씨가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을, 이미아씨가 베버 오베론 서곡을, 김광현씨가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지휘하며 이탐구, 백윤학, 차웅, 정주영씨가 슈만 교향곡 3번을 나눠 지휘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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