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기업인 한국HP의 임직원들이 전산시스템 총판 업체로부터 13억원의 금품을 받아 챙겨오다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2년 전에도 한국IBM 임직원들이 유사 비리 혐의로 처벌을 받은 적이 있어 관련 업계의 부패 근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31일 전 한국HP 공공사업본부장 심모(50)씨를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부사장 함모(45)씨 등 한국HP 임직원 9명과 총판 업체 J사 대표 김모(58)씨 등 임직원 11명, M증권 이사 정모(45)씨 등 시스템 발주업체 임직원 13명, 전 서울지방항공청장 신모(52)씨 등 공무원 2명을 업무상 배임, 배임 수재, 뇌물수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심 전 본부장 등 한국HP 임직원 7명은 2003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J사로부터 “높은 할인율로 HP 제품을 받아서 계속 납품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명절 인사비, 카드대금 대납, 전셋돈, 해외 골프여행 경비 등으로 12억여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 등 시스템 발주업체 임직원 13명은 J사로부터 납품 청탁 대가로 모두 8억7,000여 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J사 임직원 11명은 1,073억원 규모의 전산시스템 납품 사업을 하면서 한국HP와 발주 업체임직원 및 공무원 등에게 금품을 주면서 회사 자금 10억5,900만원을 영업 활동비 이름으로 빼돌려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전산시스템 관련 업계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은 가격 결정 방식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HP등 유명 전산장비 업체들은 외국에서 들여 온 물건을 직접 납품하지 않고 총판 업체가 대신 납품하고 있다”며 “현재 국내 전산장비 시장의 80%는 한국HP 등 2,3개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총판 업체들을 상대로 할인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사실상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납품을 받아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총판 업체로서는 발주 업체 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 관계자들에게도 금품 로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심지어 한국HP가 발주 업체에 로비를 하면서 사용한 자금도 총판 업체들이 대신 내줬을 만큼 다국적 기업의 봉 노릇을 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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