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부터 삐걱 로스쿨 향후 전망
“40명으로 뭘 어쩌라는 건지….”
서울 소재 한 사립대 법대 학장의 푸념이다. 30일 로스쿨 선정 내용이 공개됐지만 심사 결과에 만족하는 대학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심사에서 탈락한 대학이나 인가를 받은 대학이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일부 대학들은 심사 결과 공개와 함께 불복 소송에 나설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첫출발부터 로스쿨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됨에 따라 ‘국제경쟁력을 갖춘 법률가 양성’이라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원 제한 때부터 예정된 반발
정부가 오는 9월 최종 인가 심사에서 로스쿨 인가 대학수 및 총정원 등 로스쿨의 전체적인 틀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점을 감안하면 현재 예비 인가를 받은 25개 대학 중 최소 10곳은 40명의 ‘초미니 로스쿨’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도 인원으로 사법시험의 진입 장벽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높다. 대구 K대 법대 교수는 “실무 교육을 강조하는 로스쿨의 성공 여부는 양질의 변호사를 얼마나 많이 배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40~50명의 숫자에 불과한 교육 체계로 특성화 교육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총정원을 2,000명으로 제한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혼란이라고 지적한다. 정용상 로스쿨비대위 상임집행위원장은 “이해집단의 입김에 휘둘려 ‘총정원 통제’나 ‘지역균형배분’과 같은 각종 정치논리가 끼어들다 보니 기형적인 로스쿨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특성화한 커리큘럼을 마련하라고 대학에 주문해 놓고도, 정작 로스쿨 자체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모든 대학이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로스쿨 정원은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최소 4,00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놔 이런 견해에 힘을 실어 줬다.
‘로스쿨 낭인’ 양산될 수도
로스쿨 도입에 따라 법무부가 마련 중인 ‘변호사시험법(안)’도 로스쿨의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법안 초안은 시험과목과 시험방식이 현행 사법시험과 매우 유사해 로스쿨 성공의 관건인 변호사 합격률을 높일 수 있을 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초안에는 합격 비율과 관련, 구체적인 수치 없이 “교육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계한다”는 정도로만 적시돼 있어 정부가 목표로 삼는 로스쿨 졸업생 80%의 합격률을 보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합격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고시 낭인’을 ‘로스쿨 낭인’으로 대체하는 부작용만 낳을 수밖에 없다. 장재옥 중앙대 법대 학장은 “로스쿨은 일정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소양과 자질을 확인하는 자격시험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 로스쿨 유치 실패 대학 반발 속사정
로스쿨 유치에 실패한 대학들은 "지역균형 발전에 역행하고, 특성화 교육을 외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탈락 대학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칫 대학의 간판이 사라지게 생겼다'는 위기감과 '투자비를 건질 수 없게 됐다'는 절박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명문ㆍ비명문 갈림길" 당혹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들은 '비명문대'로 인식되는 결과를 우려하는 눈치다. 로스쿨 유치 실패로 사회 엘리트인 법조인 양성의 직접적인 통로가 차단돼 대학 위상이 추락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사실 로스쿨은 '3류 취급'을 받던 대학이 명문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었다"며 "유치에 실패한 대학은 영원히 하위권 대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단언했다.
대학가에서 오랜 기간 '간판 학과' 대접을 받았던 법대의 위상이 내년 로스쿨 출범과 함께 추락하게 될 상황도 이들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로스쿨 진학을 위한 특성화 교육으로 법대 교육과정을 재편할 방침을 모색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한 로스쿨 전문학원 관계자는 "로스쿨은 다양한 인재 선발이 원칙이어서 법대 교육이 입학에 큰 도움이 못 된다"며 "법대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 하다"고 말했다.
투자비 회수 걱정
대학별로 최고 수 백억원에 달하는 투자비도 탈락 대학들이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로스쿨 유치 희망 대학들이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은 모두 4,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비용 대부분은 로스쿨 전용도서관 등 관련시설 설치와 교수 영입에 들어갔다. 인가 신청 대학 41개 대학이 평균 100억원 정도 투자한 것을 감안하면 유치에 실패한 16개 대학이 사용한 1,600억원이 고스란히 사라지게 됐다. 한 서울 사립대 관계자는 "다른 전공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용도서관 건립 등에 '올인'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스카우트전을 통해 영입한 교수 활용 부분도 골치거리다. 동국대는 로스쿨 유치를 위해 교수 20명을 추가로 선발했으며, 국민대는 10여명의 교수를 새로 영입했다. 선문대는 겸임교수를 포함해 36명을 신규 채용했고, 한남대도 13명을 새로 뽑았다. 동국대 관계자는 "로스쿨 선정을 확신했기 때문에 사실 충격이 너무 크다"며 "추가 선발한 교수와 새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대학은 벌써부터 문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서울 사립대 관계자는 "로스쿨 유치는 대학들이 총력을 기울인 사업"이라며 "유치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총장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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