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씨는 며칠 전 난생 처음으로 응급실 문턱을 넘었다. 한밤중에 아이의 코피가 터져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도 겨울만 되면 코피를 달고 다녀 짓궂은 농담을 듣더니, 아들마저 찬바람 불 때면 걸핏하면 터지는 코피 때문에 괴로워한다.
코피가 나면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마련이다. 건강의 적신호가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코피는 대부분 여러 신체조건이 악화되면서 작은 혈관이 손상돼 발생하며 전염되거나 유전되지는 않는다.
■ 코피 왜 날까?
코피는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어린이는 발육상 특징 때문에 코 앞에 딱지가 잘 생기는데, 이 딱지를 떼내면 코로 숨쉬기가 편해 습관적으로 코를 파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코의 앞부분에 만성적인 상처가 생겨 코피가 계속 나게 된다. 자라면서 습관이 교정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다만 혹시 코를 만지는 원인이 최근에 증가하는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은 아닌지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어른이 자주 코피를 흘리면 비중격 만곡(콧대가 휘어진 것)에 의한 것인 경우가 많다. 비중격 만곡은 코를 좌우로 나누어주는 칸막이가 한쪽으로 굽는 증상으로, 겨울에 특히 심해진다.
또한 감기 등으로 인해 코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점막이 충혈되고 외부 자극에 약해져 코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도 콧속을 후비거나 코를 세게 풀어 키셀바하(콧대 주위에 모세혈관이 많은 부분)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서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질환으로 인해 코피가 날 수도 있다. 순환기질환 특히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혹은 신장질환이 있는 경우, 드물게는 오슬러씨병(유전성 혈관 이상)으로 코피가 날 수 있다.
어린이는 백혈병, 혈우병, 혈소판감소증 등 혈액질환으로 코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전신 상태가 좋지 않고 살갗에 보라색 반점이 나타나며, 잇몸에서 피가 나기도 하므로 단순한 코피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또 비인강선종(사춘기 남성에게만 나타나며 콧속 깊은 곳에서 출혈) 때문에 피가 많이 나오는 수도 있다. 질환으로 인한 코피는 잘 멎지 않으며 자주 나는 것이 특징이다.
여성의 경우 월경 때 코피를 흘리기도 한다. 대상 월경이라는 이 현상은 월경이 있어야 할 시기에 맞춰 폐, 위장, 젖 같은 데서 피가 나오는 것이다. 월경 기간이 끝나면 저절로 멎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응급 처치법
일반적으로 갑자기 코피가 나거나 충돌에 의해서 코피가 나면 간단한 처치로 금방 지혈되므로 당황할 필요가 없다.
코피가 나면 우선 몸을 눕히고 탈지면으로 콧구멍을 막은 다음 코를 차게 해주어야 한다. 눕힐 때 머리의 위치는 몸과 평평하게 하거나 약간 높게 해준다.
그런 다음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콧방울 양쪽을 5~10분 정도 누르면 대개 피는 멎는다. 코피의 대부분은 콧방울 안쪽에 있는 비중격의 키셀바하 부위에서 나는데, 이 부위는 혈관이 그물처럼 돼 있어 조금만 손상돼도 곧바로 피가 나며, 압박을 하면 금세 멈춘다.
코피의 양이 많으면 키셀바하 부위를 압박할 수 있도록 탈지면을 깊숙이 밀어넣은 다음 콧방울을 양쪽에서 눌러주면 더욱 효과적이다. 물베개나 얼음주머니, 젖은 수건 등으로 이마와 콧마루를 차게 해주는 것도 좋다.
출혈량이 많을 때 똑바로 누우면 아무래도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된다. 아이들은 그 때문에 토하거나 복통을 호소하기도 하므로 피를 곧바로 뱉게 하고 옆으로 눕히는 것이 좋다. 누워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기는 하지만, 피가 목으로 많이 흐르는 경우에는 뱉어내기 쉽게 상체를 숙인 자세로 앉히는 것도 좋다.
코피가 쉽게 멎지 않으면 출혈 부위에 지혈제를 먹인 거즈나 솜을 집어넣고 약이나 전기치로를 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밖에 지혈제를 투약하거나 주사하고 진정을 시키기 위한 신경안정제를 쓸 때도 있다. 심하면 수혈하기도 하고, 드물지만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자주 코피가 나면 피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무슨 원인으로 나오는지, 단순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질병 때문인지 등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피가 나는 부위를 살피기 위해서는 비경 검사, 후비경 검사 등을 한다. 그리고 혈액 검사, 혈압 측정, 코의 X선 촬영, 심전도 검사, 간 기능 검사, 소변 검사 등 각종 조사를 통해 원인을 파악한다.
별 이유 없이 코피 나는 경우에는 가급적 코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항상 앞으로 상체를 숙인 자세로 일을 하는 사람은 가끔씩 가벼운 체조를 해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어야 한다.
■ 코를 촉촉이 유지하세요
코 점막은 촉촉해야 냄새도 잘 맡고 먼지 같은 이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코 점막이 건조해지면 이런 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이물질이 쉽게 생겨 코막힘까지 생길 수 있다. 겨울철에는 기온이 낮은데다 난방으로 실내 습도가 낮기 때문에 콧속을 촉촉이 유지하기 힘들다.
콧속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방 안에서는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고, 자기 전에 바셀린을 콧속에 발라주면 건조를 막을 수 있다. 외출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면 도움이 된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정승규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김경수 교수>도움말=삼성서울병원>
■ 코피 날 때 지켜야 할 수칙
①콧등이나 콧방울을 차게 하고 꼭 눌러준다(약 10분 정도).
②지혈 팩이나 거즈를 넣었을 때에는 24시간 이내 제거한다.
③지혈 팩이나 거즈가 없을 때 다시 출혈이 있으면, 편하게 기대 앉은 뒤 콧방울을 5분 동안 눌러준다. 숨은 입으로 쉬면서 피가 넘어가면 뱉는다.
④피가 계속 멈추지 않으면 병원을 찾는다.
⑤코피가 멈춘 지 12시간 내에는 코를 풀면 안 된다.
⑥피는 삼키면 안 된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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