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광주대교구가 성모 발현(發顯) 논란이 있는 나주 ‘성모동산’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파문을 경고, 한국천주교 사상 첫 사제 파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주교는 24일 교령(敎令)을 통해 “‘나주 윤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을 신봉하는 이들’이 ‘사적 계시’ ‘기적’이라고 선전하고, 로마 교황청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유인물과 전자매체를 통해 한국 교회를 비방하고 있으나 이러한 행위는 건전한 신앙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다”면서 “성모동산에서 성사(聖事) 의식을 주관하거나 참여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자동처벌의 파문 제재에 해당된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성모 발현은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이적(異跡) 현상을 가리킨다. 로마 교황청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을 인정해왔는데, 1858년 한 소녀가 마을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를 처음 본 이후 18차례나 발현했다는 프랑스의 루르드가 대표적이다.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 1830년 프랑스 파리, 1846년 프랑스 라 살레트, 1871년 프랑스 폴멩, 1879년 아일랜드 노크,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 1932년 벨기에 보랭, 1933년 벨기에 바뇌 등에서 성모 발현이 일어난 것으로 교황청은 공식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이적 주장이 있었지만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없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이적이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데, 그런 현상을 보고서 신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지를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해 이적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나주 성모동산 건은 1985년 6월 미용실을 운영하던 윤 율리아라는 여성신자가 가진 성모상(像)이 피눈물과 향유를 흘리는 등 이적을 나타냈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많은 신자들이 이를 추종해 논란이 계속돼 왔다.
이를 추종하는 신자들은 수천명에 달하며 전남 나주시 교동에 성당과 경당을 짓고 매월 정기기도회와 치유행위 등을 해왔다. 관할 광주대교구 측은 오랜 조사 끝에 나주 성모동산 측이 주장하는 현상은 “초자연적인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아니며 올바른 신앙을 해치는 것”이라면서 1998년부터 4차례에 걸쳐 사목교서 등을 통해 중단하라는 권고를 해왔다.
인근 대구대교구 최영순 대주교도 “윤 율리아 측에서 주장하는 사적 계시와 각종 집회는 가톨릭교회와 전혀 무관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된 어떤 종교적 행위도 금지할 것을 교구 신자들에게 당부한적이 있다.
그럼에도 나주 성모동산 측이 이적 주장과 종교행위를 계속하자 광주대교구가 이번에 최후통첩을 발한 것이다. 최창무 대주교가 발표한 교령(敎令)은 그 자체가 교회법으로서의 효력을 지닌다.
최 대주교는 파문 경고와 함께 “성모동산에 관련돼 있는 장모 신부가 광주대교구의 사제단과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장 신부에게 사제서품 때 위임한 ‘전국 공용 교구 사제 특별권한’ 일체를 취소했다.
이로써 장모 신부는 사제로서의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했으며 사실상 광주대교구 사제단에서 제적됐다. 광주대교구 관계자는 “앞으로 장 신부는 교회법상 미사나 영성체 등의 성사행위를 할 수 없으며 해도 무효가 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200여년의 한국천주교 역사에서 사제가 파문당한 경우는 없었다.
이에 나주 성모동산에 관여한 신자들은 성모동산 홈페이지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광주대교구의 자동처벌의 파문 제제는 자신들을 박해하는 것이라면서 이에 불복해 2월2일로 예정된 정기 기도회를 강행할 뜻을 밝히고 있다. 장 신부와 평신도들이 이같이 최후통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 확실해 대규모의 파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대교구 관계자는 “자동파문의 제재는 양심상의 문제로서 가톨릭 신자가 남몰래 성모동산의 의식행위에 참여하면 별도의 행정조치가 없어도 자동적으로 파문되는 것”이라면서 “오랫동안의 권고 끝에 나온 이번 교령이 최종 판결이며 더 이상의 추가 조치는 없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파문
가톨릭에서 세례 받은 신자가 교리나 윤리적으로 크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교회가 신자공동체로부터 제외시키는 처벌을 말한다. 교황이나 주교를 물리적으로 폭행하거나, 고해비밀을 누설하거나, 낙태 행위를 했을 때나, 배교자ㆍ이단자ㆍ이교자인 경우 등이 파문의 대상이다.
나주 성모동산 건의 경우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적 계시와 이적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에 해당한다는 게 천주교 주교회의 측의 설명이다. 또 광주대교구의 자동파문 선언은 당장 파문이 됐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주 성모동산의 의식행위를 주관하거나 참여하게 되면 그 때부터 파문된다는 것을 뜻한다.
파문이 된다고 해서 사회법에서처럼 가시적인 물리적인 조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교회법상 영성체 등 신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금지된다. 파문은 잘못된 신앙행위를 바로잡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파문을 당한 사람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고백하면 주교나 교황이 사면해줄 수도 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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