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담에 붙은 담쟁이 덩굴의 아름다움이 유난스러운 계절이다. 빨갛게 물들어 우중충한 도시에 정감을 주는 가을철 담쟁이도 좋지만 앙상한 덩굴줄기를 그대로 드러내어 온갖 무늬를 담벼락에 새긴 겨울 담쟁이의 아름다움은 맛이 새롭다.
차갑고 맑게 갠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고 검은 프랙털 무늬를 떠올리는 느티나무 잔가지처럼 비어 있는 공간의 아득한 미감을 일깨운다. 그리고는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저 놈들은 울퉁불퉁한 화강암 벽면도 아닌, 매끄럽게 구워진 벽돌 위를 자유자재로 기어 다니는 것일까.
■덩굴줄기를 들여다 보니 완전히 스파이더맨이다. 덩굴 곳곳에서 대여섯의 발가락이 달린 발 같은 줄기가 나와 있다. 발가락 끝에는 촛농을 살짝 눌러 놓은 듯한 작은 판이 달렸다. 이 '발 줄기'는 손으로 살짝 당기면 금세 툭 끊어진다. 이와 달리 발가락 끝의 판은 손톱으로 긁어도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점착성이 강하다.
줄기에 새 순이 자랄 때마다 이런 발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거기서 나오는 작은 접착력을 수없이 모아서 전체 덩굴을 지탱할 힘을 만든다. 햇볕을 가득 받는 귀중한 공간인 벽면을 독차지할 만한 담쟁이의 지혜다.
■능소화 덩굴의 악착스러움은 또 다르다. 마치 암벽 등반가처럼 종횡 어느 방향으로든 요철(凹凸)만 있으면 능숙하게 타고 오른다. 덩굴 곳곳에서 싹을 틔운 뿌리줄기로 옴폭한 곳은 두 팔로 양쪽을 밀 듯, 볼록한 곳은 두 손으로 꼭 움켜쥐듯 하며 중력을 이겨낸다.
담쟁이 덩굴이 오목한 공간을 건너뛰듯 하는 것과 달리 능소화는 아예 그 속으로 파고 들어 단단히 몸을 버틴다. 적당히 감고 오를 나뭇가지나 그물만 있으면 번성하는 나팔꽃이나 붉은인동과 달리 능소화는 세로로 요철이 길게 난 벽면 같은 발판을 갖춰 주어야 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식물의 생명력은 경이롭다. 인간도 수시로 그런 지혜를 흉내내지만, 사회환경이 자연환경과 달라서인지 자칫하면 어리석어 보이고, 때로는 추하다. 정치ㆍ사회환경이 급변하는 정권 교체기를 맞아 권력 언저리에 악착같이 늘어붙으려는 사람들의 행태가 꼴불견이다.
덩굴식물의 생태는 정해져 있다. 담쟁이나 능소화는 붙어 오르고, 칡이나 등나무는 감고 오른다. 감는 방향도 종에 따라 왼쪽, 오른쪽으로 정해져 있다. 실컷 왼쪽으로 감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감고 오를 수 있는 재주만큼은 아직 덩굴식물도 인간을 따르지 못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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