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장사(葬事) 풍경도 이젠 많이 바뀌어서, 매장보다 화장이 압도적으로 더 늘어난 것 같다. 국토도 좁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 정부의 권유이기도 하다. 한데, 개인적으론 도무지 화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벽제 승화원 풍경을 몇 번 본 뒤, 그리고 몇몇 납골당들을 다녀오고 난 뒤, 바뀐 생각이기도 한데, 화장이라는 것이 어쩐지 죽은 이보다는 지나치게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풍습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망자를 단 몇 시간 만에 항아리 크기로 축소시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그 과정은 대단히 폭력적이다), 각진 서랍 크기의 뉠 자리는 유족들의 어깨와 마음까지 옹송그리게 만든다. 살아서도 아파트에 갇혀 지내다가, 죽은 뒤에도 직사각형 안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만다.
벌초 걱정도 없고, 따로 관리할 것도 없으니, 잊는 것 또한 쉬우리라. 어린 시절, 이름 모를 야산을 뛰어다니다가, 반달 같은 봉분 옆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골랐던 적이 있었다. 단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망인이었지만, 그가 나를 보듬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땅 걱정들을 많이 한다. 그때마다 단군 이래, 지금까지 이 땅을 거쳐 간 총 인구가 몇 명이 될까,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어디에 묻혔을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면, 돌아갈 곳은 오직 한 군데일 터. 각진 서랍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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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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