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시절, 한동안 홈쇼핑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골치 아픈 뉴스도 보기 싫고, 늘 뻔한 드라마도 보기 귀찮아, 언제나 홈쇼핑에 채널을 맞춰놓았다.
그곳은 일 년 내내 조명이 밝았고, 24시간 친절했으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따뜻한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와이셔츠를 사고, 스팀다리미를 사고, 간장게장을 사고, 운동화를 사고, 디카를 구입했다. 아, 주문전화를 받는 텔레마케터들은 또 얼마나 상냥했던가. 혹시, 내가 중간에 전화를 끊을까봐, 그녀들은 쉴새없이 말을 걸었고, 거듭거듭 주소를 확인했다.
배달된 상품들은 그리 썩 좋은 품질은 아니었다. 와이셔츠는 습자지와 비슷했고, 스팀다리미는 미적지근한 안개만 뿜어냈고, 간장게장은…… 에휴, 말을 말자, 운동화는 실밥이 뜯겨 있었고, 디카는 후에 알고 보니 다른 곳보다 오만 원 더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 것을 빤히 알면서도, 나는 계속 밤마다 홈쇼핑을 보고 주문전화를 걸었다.
후에, 지금의 아내가 자취방에 들려, 한쪽 구석 차곡차곡 쌓여진 홈쇼핑 박스들을 본 뒤, 작게 이런 말을 했다. 에고, 우리 오빠, 많이 외로웠나보구나. 그제야 나는 홈쇼핑이, 사실은 '고독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외로움을 고객 삼아 장사하는 사업. 이 밤에도 고독사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리라.
<저작권자> 저작권자>
소설가 이기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