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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순수문학계 기린아 히라노 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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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순수문학계 기린아 히라노 게이치로

입력
2008.01.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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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일본의 유력 문예지 <신초(新潮)> 에 소설 <일식> 을 투고해 잡지 맨 앞머리를 장식했고, 이듬해 아쿠타가와상을 거머쥐며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을 세웠던 히라노 게이치로(33).

‘미시마 유키오의 재림’이란 찬탄을 일으켰던 데뷔 이래 그는 장편 <달> <장송> <얼굴 없는 나체> , 소설집 <센티멘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등을 발표하며 예리한 시각과 전위적 기법으로 차세대 일본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다. 올 가을엔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일본 측 조직위원으로 방한할 예정이다.

지난달 대산문화재단과 창비가 주관하는 제6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박채림(시), 오성용(소설), 이주영(희곡), 정상현(시나리오), 노대원(평론), 김해등(동화)씨가 22일 도쿄에서 히라노씨를 만났다.

-중세 유럽 한 수도사의 이교적 신비 체험을 다룬 <일식> 에서 한자가 많은 장중한 의고체 문장이 화제와 논란이 됐다.

“무라카리 하루키 이후 일본 소설의 문체는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문제는 어려운 한자를 쓰지 말자는 교육 풍토와 더불어 일본 문학이 ‘언어의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한자로 새로운 문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인간이 가진 다면성을 단조로운 문체로는 표현해내기 어렵다. 밝은 문장으로 죽음을, 무거운 문체로 연애를 그릴 순 없잖나.”

-<일식> <달> <장송> 의 3부작 이후, 단편집 <센티멘털> 을 시작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센티멘털> 은 젊은 남녀의 성문제를 독특한 형식으로 다뤄 인상적이다.

“현대 작가인 만큼 동시대 문제에 관심이 많다. 과거를 소재로 작품을 쓰면 지금 상황이 훨씬 잘 보이게 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 문제를 항상 같이 생각한다. 기존 연애소설이 일정한 패턴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센티멘털> 에선 일부러 다른 형식을 취했다. 일테면 단편 ‘얼음 덩어리’에선 두 서사를 동시에 교차 서술했다. 인터넷에서 같은 페이지를 보는 네티즌들이 링크에 따라 서로 다른 지점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데뷔작 <일식> 이 4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일본에서 ‘잘 팔리는’ 순문학 작가다.

“요즘 일본에선 ‘엄지소설’, 주로 여고생을 독자층으로 하는 휴대폰 소설이 인기다. 1,500만 명이나 읽은 것도 있다. 오락 소설이 많이 나가고 본격문학 작가는 금방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많은 독자가 찾는 작품을 쓰려 고심하고 있다. 예전엔 1년만에 100만 부가 팔린 뒤엔 아무도 안읽는 소설보단, 1년에 10만 부가 팔려도 계속 독자가 찾는 소설이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1년에 10만 부가 팔리는 작품을 못쓰는 소설가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다.”

-한국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로 불리며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김애란, 정한아씨 등 신진 작가들은 이런 문제를 소설로 쓰고 있다. 일본 젊은 세대의 고민은 무엇이고, 작가들이 이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졸업한 2000년 당시 일본 경제는 어려웠고 취직도 힘들었다. 젊은이들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절박한 고민을 하게 됐다. 전후엔 국가 재건이란 목표가 있었지만, 현대는 풍요롭고 복잡하므로 어떤 사회문제가 있어도 자신이 그 문제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잘 몰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당시 등단했던 작가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하며 근거로 든 징후 중 하나가 작가가 되는데 있어 경험, 통찰보단 창작 코스 이수가 중요해졌다는 점이고, 이는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문학이 아닌 법학을 전공한 당신은 이런 경향을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내가 다닌 대학 법학부는 법학과 정치학 전공이 있었는데, 나는 소크라테스에서 자크 데리다에 이르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했다. 문학 공부와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고, 작가적 성찰을 얻는데도 도움이 됐다. 메이지 시대 이래 작가 지망생은 소설가 집에 사숙하며 창작 공부를 하는 것이 일본적 전통이었다. 최근 문예창작학과가 설립되면서 문학 교육이 개인 지도에서 대학으로 옮겨가고 있다. 교육 시스템으로서 문창과가 얼만큼 창작에 도움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문학 교육이 아닌 다른 경험으로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많다.”

정리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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