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가 빠르지는 않지만 무섭게 퍼지고 있다. 2007년 신규 감염자가 사상 처음 감소해 빠른 확산세가 진정된 듯 보이지만, 40대 중년층 감염자는 급증하고 연간 에이즈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서는 등 그 파괴력은 오히려 커지는 추세다.
29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확인된 에이즈 감염자는 744명. 2006년(750명)에 비해 절대 숫자는 6명, 비율로는 0.8% 감소했다. 신규 감염자가 감소한 것은 에이즈 환자가 국내에서 최초 발견된 1985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2007년 현재 내국인 가운데 에이즈 보균자로 확인된 사람은 4,343명에 달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감염자 감소를 마냥 반기지 않고 있다. 감염 연령이 급격히 높아지고, 에이즈 사망자는 크게 늘어나는 등 에이즈 파괴력은 계속 커질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에이즈ㆍ결핵 관리팀 남정구 연구관은 “40대 이상 감염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20대 신규 감염자가 40대를 능가했으나, 2005년 이후 역전돼 지난해에는 40대(192명)가 20대(132명)보다 1.5배나 많아졌다.
남 연구관은 “에이즈에 걸린 뒤 보통 8년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40대 이상의 신규 감염자가 급증한 것은 20~30대 감염된 뒤 모르고 지내다가 증상이 악화되면서 감염을 알게 된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염 사실을 모르는 사람까지 감안하면 국내 에이즈 감염자는 공식 수치보다 3~4배 많으며, 유엔 역시 2005년 현재 우리나라 에이즈 감염자를 1만3,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이즈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103명으로, 85년 이후 최초로 100명선을 넘었다. 이는 40대 이상 중년층 신규 감염자 급증과 맞물려 향후 에이즈가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으로 부상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발병ㆍ전파 양상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에이즈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조건 백안시하기보다는 간염, 당뇨병처럼 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관련 연구의 진전으로 건강관리를 잘하고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감염 후에도 20~3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에이즈 감염자는 24년, 덴마크는 약 34년간 생존하며 국내에서도 85년 감염자가 아직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남 연구관은 “성적 접촉, 수혈, 수직감염 등을 제외하면 일상 생활에서 감염되는 경우는 없다”며 “모르는 사람과의 콘돔 없는 성접촉 등 감염경로를 통한 접촉이 있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감염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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