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 공제조합 기금을 위탁 받아 운용 중인 펀드매니저 A씨는 최근 종합주가지수 1,800선이 무너져 손절매를 고심하던 중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공제조합 기금 담당자에게서 "지수가 떨어진다고 기계적으로 손절매 하지 마세요. 수익률이 나빠져도 운용기간을 유예해 줄 테니 신중을 기하십시오"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온 것이다.
원래 계약상으론 코스피 등락률과 상관없이 운용수익률이 마이너스 20%가 넘으면 자동 손절매 한 뒤 계약해지를 하게 돼 있었지만, 공제조합 측이 판단을 달리 한 것이다.
A씨는 "간접투자 문화가 정착되고, 자본유입 통로가 다변화하면서 우리 증시가 과거처럼 바닥을 모른 채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다"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강제 손절매 당하기 일쑤였는데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2. 이정걸 국민은행 아시아선수촌PB센터 팀장은 국내 증시가 4.43% 폭락한 22일, 펀드 환매 시기를 묻는 고객들의 전화에 장시간 시달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한 고객에게서 위로 전화를 받았다. 9ㆍ11 사태 등 증시 폭락기마다 단타 매매로 수익을 얻다가 증시 변동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 말 펀드 쪽으로 자산을 옮긴 투자자였다.
이 고객은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 변덕을 부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돈을 벌어주는 화수분이다. 단기 급락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며 오히려 훈수를 뒀다.
이 팀장은 "투자자들이 과거 일시적인 급ㆍ등락을 수도 없이 겪은 탓인지, 이번 조정에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며 "투자자들의 성향에 따라 증시 대응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단기 변동에 동요하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며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증시에 '뚝심'이 싹트고 있다. '공포'와 '탐욕'을 오가며 냄비형 투자를 하던 과거와는 달리, 일시적인 주가 급ㆍ등락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 투자하는 뚝배기형 투자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초부터 종합주가지수가 폭락하자 증시 주변에선 펀드런(대량 환매사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식형 펀드에는 오히려 자금이 더 유입됐다.
실제 1월 2일부터 24일까지 17거래일 동안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이 유출된 경우는 24일 하루 뿐이었다. 특히 주가가 떨어진 11거래일 동안 단 한 번의 자금 유출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팔자 행진'도 우리 증시의 건강성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라고 지적한다. 다른 신흥시장에 비해 투자 매력이 떨어 진 것으로 볼 게 아니라, 선진국 증시처럼 자산 현금화가 수월해졌다는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과거 우리가 그랬듯이, 웬만한 신흥시장은 외국인이 대거 매도하면 기관과 개인이 투매에 나서 폭락하기 십상"이라며 "하지만 우리 증시는 개인과 기관들이 단기 급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고 있어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기에 편한 시장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달 2~25일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7조7,546억원 어치를 순매도한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조1,756억원과 10조1,362억원 어치를 사들이며 지수 방어에 나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런 분위기를 이용, "위기는 늘 있어 왔지만, 미래에셋을 믿고 장기 투자를 해 달라"며 달라진 투자문화에 호소하는 홍보전략을 쓰고 있다.
물론 아직 '뚝심'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세계 증시를 또 다시 급습할 수 있는 만큼, 국내 증시에 대한 진정한 시험대는 2차 충격이 올 때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채권 보증회사(모노라인)들의 신용등급 추락은 생각보다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 올해 최저 지수대를 다시 낮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선엽 연구원도 "지금은 투자자들이 급락장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고 물려 있는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증시가 일시 반등해 1,800선에 근접하면 손실폭을 최소화 하기 위해 증시를 떠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형영 기자 truest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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