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ㆍ25재보선 직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DJ 고향인 전남 무안ㆍ신안 지역구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자 한나라당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전여옥 당시 최고위원은 3월 2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업씨는 후보가 돼서는 안 될 수많은 이유가 있다. (2002년 기업체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년 6개월 간 수감생활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사면ㆍ복권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나설 수가 있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DJ가 이 당을 만들었고, DJ와 홍업씨는 혈연 관계이기 때문에 공천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DJ의 사당인가. 민주당은 혈연만 가지면 모든 후보가 공천후보가 될 수 있는가. 더구나 DJ 고향 공천은 너무 속보이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이날 많은 최고위원들은 홍업씨의 자진 사퇴나 민주당의 공천 취소를 요구했고 이는 한나라당 대변인 성명에 반영됐다. 3월 26일에도 최고위원들의 성토와 대변인 성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공천을 끝까지 밀고 나가고, 열린우리당도 DJ를 배려했는지 이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아 홍업씨는 가볍게 승리했다.
이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올해 1월 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4월 18대 총선에서 YS 고향인 경남 거제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현철씨에 대해 거론되는 문제점이 1년 전 홍업씨와 관련해 언급됐던 하자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현철씨는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으로 구속돼 '현직 대통령 자녀 중 첫번째 수감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2004년에도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복역하다 지난해 2월 사면ㆍ복권됐다. 전과기록으로만 보면 홍업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또한 현철씨 아버지 YS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을 만들었고,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공식 지지했다. 현철씨가 이런 당에서, 그것도 아버지의 텃밭에서 공천을 받겠다는 것은 YS에 묻어 쉽게 가 보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홍업씨 만큼이나 동기와 방법이 불순하다.
25일 활동을 시작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가 현철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만약 공천을 준다면 모양이 상당히 우스워질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저런 범죄자를 뽑냐" "지역보스의 사당이 돼 아들에게 특혜를 준다" 등 홍업씨에 대해 1년 전 날렸던 화려한 멘트가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되고, 한나라당은 스스로의 말도 책임지지 못하는 '국민 배신 정당'이 될 것이다. 공당이라면 이런 일은 피해야 한다.
아울러 부정부패 범죄로 형이 확정된 사람들을 공천하지 못하게 한 한나라당 당규에서 사면ㆍ복권자를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모양인데 이 역시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이 조항은 한나라당이 4ㆍ25재보선 패배 직후 깨끗한 공천을 위해 도입했는데 18대 총선을 앞두고 형세가 일방적으로 유리하니까 도입 당시 정신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비리에 관대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이렇게 바뀌어 현철씨의 공천이 가능해지는 것은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홍업씨가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해도 사면ㆍ복권자이니 하자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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