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놀아보는 거죠. 나이트클럽이 공짜라고 생각해보세요.”
2008년 하이서울페스티벌 봄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현대무용가 안은미(46)는 신나보였다. 특유의 야광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는 “5월이 되면 핑크가 서울을 뒤덮을 거예요. 텐트, 의상, 모자 등 어디서든 핑크색을 볼 수 있을 겁니다”라며 웃었다.
빡빡 머리와 상반신 노출, 형형색색의 의상 등 늘 파격과 도발로 다가왔던 그가 서울시가 주최하는 대규모 문화 행사의 예술감독을 맡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럽에서는 ‘동양의 피나 바우쉬’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무용계에서는 비주류, 재야로 통하는 그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걱정스럽다’는 말을 듣는다”면서 “하지만 그 부분이 재미있지 않냐.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 법”이라고 했다.
올해 6회를 맞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은 그간 유명 가수들의 쇼와 불꽃놀이, 열기구 타기 등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으로 시민과는 동떨어진 관변 축제라는 지적을 받았다. 안 대표는 “안은미는 이 시대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치열한 작업을 해온 예술가다. 시민들과의 소통이 가장 큰 숙제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방향과 일치한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독일에서 신작을 올리고 돌아온 안은미는 “독일에서도 늘 하이서울페스티벌을 고민했다. 덕분에 내 작품 중에 처음으로 출연을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도 한 잔 못마셨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태평로에 있는 서울문화재단 축제사업본부로 매일 출근한다. “무용인이 이런 큰 행사를 맡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연극하는 분들이 많이 하셨죠. 삶의 규모가 10배 이상 커졌으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제 특기가 순발력과 흡수력이거든요. 하하하.” 그는 이 자리를 맡은 이유에 대해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축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은미가 이끄는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는 어떤 파격과 도발이 펼쳐질까. “파격은 대상에 따라 다른 것이죠. 시민들을 위한 행사니까 무용 작품에서의 파격과는 다른 종류의 파격이 될 겁니다.”
5월 4~11일에 열리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봄 축제에는 ‘궁 축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문화재라는 이름 속에 갇혀있던 궁을 현재의 삶 속으로 끄집어낸다는 게 핵심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축제의 공간이 되고, 서울광장에는 ‘5월의 궁’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궁이 들어선다. ‘시민들이 왕이 되는 궁’이라는 게 안은미의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밤마다 ‘팔색무도회’라는 이름의 파티가 열려 시민들을 춤추게 한다.
세종대왕 즉위식을 드라마로 꾸민 ‘세종 용상에 오르다’, 거리 축제 만민대로락(萬民大路樂)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예년에 비해 프로그램 숫자는 대폭 줄이되 집중도를 높였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개ㆍ폐회식 연출을 맡았던 프랑스 무용가 필립 드쿠플레는 무용과 서커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무대로 세계적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다. ‘안은미표’ 축제의 개막을 앞둔 안은미는 “이 축제는 나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앞으로 가야 할 예술적인 길에 대한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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