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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이명박 정권의 '37번째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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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이명박 정권의 '37번째 쇼'

입력
2008.01.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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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년 전 이 지면에 '한국 엘리트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는데, 주요 내용을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겠다.

최근 대학 입시제도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지켜보면서 논쟁마저도 인해전술로 해야 하는 건지 답답한 생각이 들어서다. 논쟁을 벌이는 양쪽 모두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는 '쇼'를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 먼저 SKY대 정원을 줄이자

나는 1996년 <서울대의 나라> 라는 책을 낸 걸 가끔 후회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주장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 폐지에 반대한다.

서울대 사람들 말마따나,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서울대를 폐지한단 말인가? 서울대 폐지가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가능하다 한들 소위 '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중 KY가 다시 서울대가 될 게 뻔하지 않겠는가.

내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SKY의 정원을 대폭 줄여 그들을 소수 정예화하면서, 한국사회의 엘리트층에 편입되고자 하는 입시경쟁의 병목 현상을 타개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엘리트의 존재와 기능을 인정한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엘리트는 엘리트다워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를 적극 포용한다.

그래서 내 주장은 평등을 강조하는 진보파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또한 기득권 사수에 열을 올릴 뿐만 아니라 기득권 무한 팽창주의를 지향하는 보수파의 지지도 얻지 못한다. SKY 의 주요 경쟁력은 졸업생 수가 많은 인해전술이기 때문에 정원의 대폭 축소는 그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진보파와 보수파는 크게 다른 것 같지만, 이들 모두 SKY의 정원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똑같다. 입시정책에서 노무현 정권은 앞으로 출범할 이명박 정권과는 크게 다른 것 같지만, SKY 기득권을 팽창시켰다는 점에선 다를 게 하나도 없다.

SKY의 정원을 그대로 두고선 무슨 짓을 혁명적으로 벌인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신념을 가진 나로서는 양쪽 모두 실속 없는 이념투쟁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구 상의 모든 나라를 다 살펴 보시라. 그 어떤 나라도 3개 대학 졸업생이 각 분야 상층부 인력의 60~100%를 점유하는 나라는 없다.

이걸 질리도록 보아온 한국 학부모들은 나중엔 어떻게 될망정 일단 자녀교육의 목표를 SKY 진입에 두고 있으며, 이게 바로 입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만병의 근원이 되고 있다.

SKY 정원을 대폭 줄임으로써 상층부 인력의 60~100%가 수십 개 대학 졸업생으로 구성된다면, SKY 진입에 실패하더라도 다른 대학에 들어가서 또 한번의 경쟁을 해볼 수 있다.

즉, 대학입시에 집중되는 병목현상을 완화함으로써 입시로 인해 피폐해진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동시에 '공부하는 대학'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번도 이 방향으로 발걸음을 뗀 적도 없다. 해방 후 지금까지 입시제도를 36번이나 바꾸는 '쇼'만 계속해왔고, 이제 '37번째 쇼'를 구경하기 직전에 있다.

■ 근본처방 없는 제도변경은 쇼

3년 전 서울대 총장이었던 정운찬씨는 "SKY 출신이 사회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면서 "형평성이나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학생 수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구 2억8,000만명인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의 총 졸업생이 매년 1만명에 불과한데 인구 4,700만명인 한국에서는 SKY에서만 1만5,000명의 졸업생이 나온다"고 지적하면서, "효율적인 학교 운영이나 연구와 교육의 질 등을 생각하면 학생 수를 지금보다 많이 줄여야 한다"고도 했다.

정씨의 생각은 백번 옳았지만, 그에겐 그렇게 할 만한 힘이 없었다. 한국 엘리트의 인해전술, 신물이 나지도 않는가? '37번째 쇼'를 관람하더라도 알건 제대로 알면서 즐기는 게 좋겠다.

<저작권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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