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28일 기자회견은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무조건 반대’의 뜻을 천명한 것이 핵심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이 부처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주장을 수용하면서 부분적 기능 조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며 “무작정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는 여야가 자신이 반대하는 대부처주의의 골격 위에 통일부 등 일부 부처를 존치시키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을 경우 이를 보류ㆍ거부할 것임을 못박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 같은 초강수를 두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가 짙게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은 처음부터 차기 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수위가 제시한 차기 정부의 주요 정책 노선들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공적이 평가 절하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이 올 때마다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부터 여건 조성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동시에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선명성 경쟁을 하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런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정통 진보진영의 중심으로 친노(親盧) 세력을 세우려 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 대한 부분 협조조차 거부하고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 한나라당과의 극단적인 대척점에 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보수 진영의 상대 세력이 신당이 아닌 친노 세력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겠다는 판단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가깝게는 4월 총선에서 친노 세력의 보존, 멀게는 대선에서 친노 세력의 집권을 고려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논리는 상당히 불안해 국민들에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일단 새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는 국민이 5년 간을 지켜본 뒤 판단할 문제다. 국민이 그 정부를 선택했으니 그에 대한 평가도 국민들이 해야 할 몫인데 이를 퇴임하는 대통령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밖의 일이다.
또 예고대로 여야 합의 개정안에 대해 보류 또는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노 대통령의 몽니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어차피 통과될 개정안에 대한 시간끌기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개정안을 15일 간 보류하면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된 뒤 처리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 법안은 다시 국회로 넘어와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 확정될 수 있다. 문제는 두 가지 경우 모두 시간이 엄청 걸리는데 이에 따른 혼란은 노 대통령이 아닌 차기 정부와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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